서지정보
서명: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
저자: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 코라 다이아몬드(Cora Diamond)
역자: 박정일
출판사: 사피엔스21
출간일: 2010년 11월 17일
원서명: Wittgenstein's Lectures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Cambridge, 1939
원서 출간일: 1989년
생각
『비트겐슈타인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는 『자연, 예술, 과학의 수학적 원형』에 이어 읽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이 1939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의 기초에 대한 강의를, 여러 학생의 강의록을 기반으로 재구성해낸 출판물입니다. 주로 러셀과 화이트헤드의 『수학 원리』를 비판하는 내용이 엿보입니다.
이 강의가 이루어진 1939년이나, 비트겐슈타인이 러셀의 제자였던 점, 그리고 당시 수학계가 맞이한 근본적 문제제기와 그에 대한 논점들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어떤 맥락의 책인지 알기 어려운 책입니다. 수학을 전공한 저도, 수학철학에 대해서는 깊게 알아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으며 여러 내용을 보충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강의에서 기초 산술을 논리학으로부터 빚어올리려 한 러셀의 시도는 틀렸으며, 산술은 논리학과 무관하게 존재한다고 말합니다. 그를 위해서 언급하는 것이 수학적 귀납법입니다. 수학적 귀납법의 재료에는 f(n)이면 f(n+1)이라는 증명이 포함되지요. 여기에 적절히 f(1)이 존재하면, f(2)도 되고, f(3)도 되고… 존재하는 모든 자연수에 대해서 성립하는 '무한한 도미노놀이'가 성립한다는 것이 우리가 아는 (기초적인) 수학적 귀납법입니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실제로 우리가, 예를 들면, f(3000)이 성립하는지 손으로 확인하는 절차를 거쳐보는 사고 실험을 통해 우리에게 그 의미를 전달합니다. 실제로 그렇게 했을 때 f(3000)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면, 우리는 수학적 귀납법을 의심하지 않습니다. 과정의 어딘가에서 실수를 했으리라고 믿는 것이지요. 가로로 25줄, 세로로 25줄씩 늘어놓은 점을 헤아렸는데 점의 개수가 624개였다면 우리는 계산 실수나 배치 실수를 생각하지 25 곱하기 25는 624일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지점에서 사람이 수학을 빚어올리는 방향을 서술합니다. 이해하기 쉬운 책은 아니지만, 이 관점을 이야기하고 책을 읽어나가면 조금은 갈피가 잡히는 듯합니다.
튜링이 마치 한국어로 말한 것처럼 '한국어'라는 단어를 써서 번역한 점이나, 'chess'를 '장기'로 번역하고 'knight'와 'bishop'은 '기사(말)'와 '주교(말)'로 남겨놓은 점 등은 조금 번역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읽는 과정의 어려움은 관련 소재에 대한 준비도 없이 뛰어든 제 멍청함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겠지요. 여러 학생의 강의록을 엮어 만든 책이다보니, 편집자의 노고에도 불구하고 한계가 드러나는 부분도 조금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일 재미있던 부분은, 학생 중 한 명인 앨런 튜링과의 논쟁 끝에, 비트겐슈타인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튜링은 내가 말한 어떤 것에도 반대하고 있지 않다. 그는 언어상으로는 모두 동의하고 있다. 그는 그 밑에 놓여 있다고 여기는 생각에 반대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수학에 볼셰비즘을 도입시킴으로써 수학의 토대를 훼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중략)… 불행하게도 튜링은 다음 강의부터 참석하지 못할 것이다.(pp.101-102)
어떤 내용인지 궁금하신 분은, 책을 한 번 읽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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