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거짓말이었어.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거든. 한참 고민하고 있는데 네가 뒤에서 어깨를 두드리더라고. 덕분에 바보같은 소리를 내면서 놀라고 말았어. 너는 웃으면서 미안하다고 했지. 늦은 것도 미안하다면서, 가방을 뒤지더니 내가 좋아하는 녹차 음료를 건넸어.
-음식물 반입 안 될 걸.
그러자 너는 간단하게 '그럼 나올 때 줄게.'라며 음료수를 다시 네 가방에 넣었어. 내 가방은 음료수를 넣기에는 턱없이 작았으니까. 너는 꼭 네가 약속을 제안한 사람처럼 날 이끌었어. 부딪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가는 사람 곁에서는 내 어깨를 감싸면서, 어깨 아래로 흘러내린 가디건을 바로잡아 주면서.
-날씨가 많이 풀렸네.
나는 간단하게 대꾸하면서 네 코트자락을 곁눈질했어. 훌쩍 가벼워진 옷차림이었지만, 나름대로 단정하게 입고 나온 티가 났어. 이런 옷도 갖고 있었구나. 이렇게도 입을 수 있구나. 그러다가도 시선을 들킬까 얼른 다른 곳을 쳐다보았어. 너는 평소보다 말이 많았고 나는 평소만큼 말이 나오지 않았어. 네 말에 바보같이 대답하는 게 전부였지.
우리는 금방 수족관 입구에 도착했어. 나는 두 명분의 티켓을 건넸어. '취소된 약속'이라는 누명을 쓴 그 티켓을 말이야.
-즐거운 관람 되세요.
곧 시야가 온통 파란색으로 가득해졌어. 우리는 희미한 빛 속에서 움직이는 해파리를 보고, 돌로 지은 성을 오가는 자그마한 열대어도 구경하고, 자연으로 돌아간 돌고래의 빈자리도 보았어.
사실은 거짓말이었어.
펭귄에 관한 안내문을 읽던 네 가방이 살짝 열려 있는 걸 보고 만 거야. 굳이 닫아주어야 할 정도는 아니었어.
-너 가방 열렸어.
-응?
나는 이 순간만 기다린 사람처럼 네 가방에 달려들었어. 너는 별 의심 없이 내게 등을 내어 주었고. 그렇게 편지는 네 가방에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어. 너는 순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는 나쁜 짓이라도 한 사람의 기분이 되고 말았어. 있잖아, 사실은 내가 정말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오늘 저녁에 헤어진 다음에도, 그 다음 날에도 학교에서 만나면 똑같이 웃어줄까?
사실은 거짓말이었어.
알록달록한 물고기들을 보면서, 한쪽 벽을 한가득 채운 커다란 수족관 앞에서, 기념품 가게의 자그마한 키링 앞에서 너는 늘 나를 불렀어. 여기 봐, 이쁘다. 라는 말과 함께. 그리고 나는 매번 뭐라고 대답했더라.
-응, 예쁘네.
내가 보고 있던 건 그게 아니었어. 내 세상은 푸른빛이 일렁이는 네 옆얼굴과 이거 이쁘다-라고 말하며 돌아보는 시선으로 가득 차 있었던 거야. 그 시선이 내 눈에 금빛 물고기처럼 뛰어들 때, 내 눈은 속절없이 흔들리고 물고기는 내 심장의 가장 깊은 곳까지 헤엄쳐 들어왔어. 마침내 찰랑, 하는 소리가 나고 말아서. 그 소리를 들킬까봐 너를 오래 쳐다볼 수가 없었어. 다행이지. 조명이 어두워서 내 얼굴빛을 숨길 수 있었던 게.
너는 동생한테 줄 거라며 귀여운 키링을 세 개 샀어. 너한테 동생이 셋이나 있었던가, 생각하고 있는데 네가 한 개를 불쑥 내 눈앞에 들이밀었어.
-노란색 좋아하지?
-어떻게 알았어?
-간단한 걸.
너는 그렇게 말하고서 하나를 네 가방에 달았어. 나는 손에 쥐여진 키링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 가방에 달았어. 수족관을 나서는 우리 가방에는 똑같은 키링이 흔들리고 있었지.
사실은 진심이었어.
버스 정류장에 서 있던 네가 갑자기 가방을 열었어. 안을 뒤적거리다가 멈칫한 것 같았는데. 아무래도 헤어질 때 편지를 넣을 걸 그랬나봐. 분명 본 것 같았는데. 너는 별 말 않고 녹차를 꺼내서 내게 건넸어. 긴장한 탓인지 목이 말라서 잘 됐다고 생각했어. 바로 마시려는데 뚜껑이 잘 안 열리더라고. 너는 내가 부탁하지도 않았는데 곧장 가져가서 뚜껑을 열어 주었어.
-다음에 또 약속 취소되면 언제든지 불러. 주말엔 항상 집에 있으니까.
그게 아니라 나는 너랑 새로운 약속을 잡고 싶었는데. 그 말을 할 용기는 없어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어.
-취소된 약속이 아니라도 괜찮고.
너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어. 지금, 나를 바라보면서 웃고 있어.
또다시 내 눈은 속절없이 물결치고 말아. 온통 파도가 치고 물살이 밀려드는데, 네 시선은 아무것도 부수지 않아. 오히려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 반짝반짝 빛이 나. 겨우 좁은 수족관을 밝히던 인공 불빛이 아니라, 온 바다를 물들이는 노을의 빛이야.
그러면 우리, 다음주에는 바다에 갈까.
거기서라면 완전히 진심이 될 수 있을 것 같아. 바보같은 핑계도 힘들게 쓴 편지도 필요 없이.
"그러면 우리, 다음 주에 바다에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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