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곰은 울먹이며 환웅의 얼굴을 겁나 때렸어요. 얼마나 겁나 때렸냐면, 얼굴에서 곰이 사랑하던 환웅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요. 퉁퉁 부르터서 겨우 숨만 쉬고 있을 정도로요.

"흐어엉...! 이 나쁜놈아!"

곰은 울었답니다.

화가 나서 울었어요. 모든 것에 화가 났어요. 이 상황 전체에 대해서 화가 났어요. 하지만 진짜 화가 난건 이런 상황에서도 자기 자신이 환웅을 사랑했기 때문이었답니다. 아아... 순정... 순애... 정말 최고의 저주가 아닐 수 없겠네요...

"훌쩍..."

환웅을 반쯤 죽여놓은 곰은 눈물을 훌쩍이며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축 늘어진 환웅의 다리를 붙잡고 질질 끌며 걸어갔어요. 혼인 신고를 하러요.

뭐... 그런거죠, 이미 루비콘 강은 건넜다, 그러니 이제 이 못난 신을 내가 책임져야한다.

"결혼해서...!"

어떻게 의식의 흐름이 그렇게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란게 사실 어떤 커다란 충격을 받으면 망가지고 변한다고 하잖아요? 곰도 그랬을지 모르겠어요. 어디서 변했을까요? 동굴에서 나왔을 때? 아니면 환웅에게 나쁜 소리를 들었을 때? 그도 아니면 환웅의 얼굴을 피떡으로 만들었을 때?

모르겠네요. 어쨌든, 곰은 한손으로는 눈물을 훔치며, 다른 한손으로는 환웅의 다리를 잡고 질질 동사무소를 향해 끌고 갔어요.

호랑이는 풀숲에 숨어서 그 모습을 보았고요. 그 모습이 죽은 아킬레우스를 끌고 가는 헥토르의 모습같기도 해서 호랑이는 아무말도 못하고 겁에 질려 눈물을 흘리고 말았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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