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의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들이 ‘폐지’ 처리되었습니다]


SNU genie (서울대학교 강의 검색 플랫폼) 에 현재 마르크스경제학 관련 교과목을 검색하면 ‘이 교과목은 폐지된 교과목입니다’라는 안내 문구를 볼 수 있습니다.

이미 수업이 폐지된 것이 아니었냐고 생각하실 수 있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폐지’ 처리는 다릅니다. 차후 학기의 커리큘럼을 편성하기 이전 본부에서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사전 수요조사를 합니다. 여기에 ‘폐지된 교과목’은 들어가지조차 못합니다. 수강생 부족 등으로 일부 학기에 폐강 조치된 강좌들은, 수업이 열리지 않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즉각 폐지되는 것이 아닙니다. 수요조사 결과나 수업이 계속 열려야 할 필요 등을 고려하여 다음 학기에 다시 개설될 수 있습니다.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들도 그런 상태에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폐지 조치가 되면 해당 교과목들은 아예 선택지에서 영영 축출되고 맙니다.

대학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학부 측은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

“경제학부는 학부 기초 교육의 수요를 우선 충족하기 위해 전공필수 과목과 핵심 강의의 대형화에 주력하고 있으며 정치경제학입문은 전임 교원이 담당하는 △정치경제의 이해 △경제학사 △고전강독 등으로 대신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본부의 26학년도 1학기·25학년도 겨울학기 사전 수요조사 결과에 대해 경제학부 행정실은 “최근에 확인된 수요는 앞서 언급한 과목으로 부응할 계획이다”라면서...”

아니나 다를까, SNU genie에서 확인한 결과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의 ‘대체 교과목’에는 ‘정치경제의 이해’ ‘경제학사’ ‘경제학고전강독’ ‘정치경제와 게임이론’ 등이 편성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대체 교과목들로 지정된 수업들은 어떤 수업들일까요? 일례로 ‘정치경제의 이해’라는 수업을 보겠습니다. ‘정치경제’라는 이름이 들어갔기 때문에 기존의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인 ‘정치경제학입문’과 유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지만, ‘정치경제의 이해’ 커리큘럼에 대한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치경제는 경제적 제도와 정치적 제도의 상호관계를 연구한다. 이 과목은 법, 정치제도, 그리고 정책이 어떻게 경제적 행위 및 제도와 관련되어 있는지에 대하여 공부할 것이다. 제도와 정책결정에 대한 규범 이론들을 개관하고, 정책결정 및 집행 과정과 개별 의사결정자들의 경제적 행위와 그 결과에 대한 분석을 다룰 것이다...”

다음은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들 중 하나로 편성되어 있었던 ‘정치경제학입문’ 커리큘럼 설명의 첫 문장입니다.

“주류경제학의 문제점을 부각시키면서 대안적인 경제학 체계가 무엇인가를 강의한다.”

그렇다면 다른 교과목은 어떨까요? ‘경제학사’ 수업의 커리큘럼을 살펴보겠습니다. 이 수업은 주류경제학과 마르크스경제학 이론의 역사를 고루 통람할까요? 지난 2025년 2학기에 열렸던 ‘경제학사’ 수업의 ‘강의 계획 상세’를 살펴봅시다.

“경제학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소개하되, 현재 가르쳐지고 있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등장하게 된 1870년대 이후에 초점을 맞추어 강의함. 단 역사이므로 고전학파와 다른 경제학파들도 함께 소개함.”

강의계획서를 열어 보면, 과연 마르크스경제학은 [내키지는 않아도 어쨌든] ‘역사이므로’ 살펴보기는 해야 할, ‘함께 소개’되는 코너 정도로 훑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의 ‘대체 과목’으로 기능합니까? 어쨌든 다루기는 했으니 구색은 맞췄다고 말할 셈입니까?

다른 대체교과목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제학고전강독’ 수업이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들의 대체교과목이라면, 자명하게도 마르크스의 『자본』 또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그럴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고전강독 수업에서는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이나 『국부론』 등만을 읽습니다. ‘정치경제와 게임이론’에서 지칭하는 '정치경제'란 정치 과정과 집단적 의사 결정을 경제학의 원리를 적용해 분석하는 공공선택이론을 의미하며, 이는 ‘정치경제의 이해’라는 수업에서 지시하는 바와 상통합니다. 마르크스경제학에서 지칭하는 ‘정치경제학’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경제학부에게 묻습니다. 이것이 서마학의 지난 투쟁과 수요 입증에 대한 응답입니까? 수요가 없다고 궤변을 늘어놓더니, 저희가 수요를 입증하니 이젠 다른 궁색한 핑계를 찾았습니까? “최근에 확인된 수요는 대체 과목으로 부응할 계획”이라고요?

호박에 줄을 긋는다고 수박이 됩니까? 학문의 교육과 이해를 이렇게 주먹구구식으로 해도 되는 것입니까? 대체과목으로 나열한 과목들이 정말 마르크스경제학이라는 학문의 대안적 학습 경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학문의 전당이 학문을 이렇게 함부로 취급해도 되는 것입니까? 수업을 없애도 수업이 듣고 싶은 학생들을 없앨 수는 없습니다. 고작해야 몇몇 학생들뿐이니 어서 그들이 졸업하기를 기다리십니까? 서마학은 마르크스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계속 규합할 것이고, 매 학기마다 개설을 요구할 것입니다.

서울대학교 내 마르크스경제학 교과목의 개설을 요구하는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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