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말까지 대량의 정어리 무리가 동해로 몰려들었습니다. 1913년 2.4만톤을 기록한 어획고는 뜬금없이 1927년에 27만톤, 1937년에는 139만톤, 1939년에는 121만톤이라는 미친 어획고를 올렸죠. 이 시기 청진항은 '정어리의 청진'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일제는 여기에 주목, 정어리 기름을 윤활유 및 등유로 사용했죠. 정말로 이 시기 일제는 정어리 기름을 통해 에너지 자립을 일부 이룰 수 있다는 꿈을 꿨습니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개전시기인 41년엔 60만톤, 42년엔 7천톤으로 추락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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