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는 악덕이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Adam Kirsch가 the Atlantic에 「Reading is a vice」라는 글을 기고했다. 글의 배경은 이렇다. 미국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독서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국제출판협회는 "민주주의는 독서에 달려 있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내가 이 블로그를 시작하고 읽고 쓰기를 꾸준히 하게 된 방아쇠를 생각하면, 동의할 수 있는 말이다.
Kirsch는 그러나, 그 슬로건으로는 사람들을 설득할 수 없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애초에 왜 독서를 하는지에 되는지에 대해서도 오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개인적인 열정 때문에 책을 읽지 공리주의적 논리 때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앞의 것에 동의할 수 있었듯, 이것도 동의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내가 '지적 허영심'이라고 부르는 것을 채우기 위해서이다. 어떤 분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나 효율적인 공부는 차치하고 그저 재미있어보이고, 다른 사람들이 인용하는 책이기 때문에 읽는다.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예술』이나 『일반언어학 노트』같은 책을 내가 읽어서 어디에다가 써먹겠는가? 사실상 '읽어 봤다'를 남기기 위해 읽는 거다. 허영에는 實이 없다는 뜻이 있다. 요즘 세상에 써먹을 데 없는, 써먹을 효율이 좋지 않은 활동이 얼마나 사치인가? 책을 허투루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는 개인적 마음가짐은 이 이야기에서 큰 의미가 없다. 그냥 나는 책을 읽는 과정에서 오는 재미와 나중에 기회가 왔을 때 읽어본 책의 재목을 색인할 수 있는 것에 만족하고, 이 쓸모는 효용에 있지 않다. 그래서 지적 허영심이다.
나는 일반적으로 독서를 다른 콘텐츠 수용적 활동에 비해 우월하거나 장려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영화, 게임, 쇼츠 감상 같은 것들 말이나, 누군가는 독서가 아니라고 취급할/그렇게 취급할 이유가 있기도 한 만화나 웹소설 같은 것을 포함해서 말이다. 매체적 특징은 있을 것이다. 단점이 부각되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그들은 우열이 있는 매체 이전에 서로 다른 매체다. 그 모든 것을 고려해서, 독서를 다른 콘텐츠보다 권장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지금 우리가 (아마도) 내릴 판단의 이야기이다. 언제든 다른 결론을 낼 수 있다. 나는 책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두렵다. 때로 그것은 순진해보이기까지 한다. 독서는 게임만큼이나, 쇼츠만큼이나 해로울 수 있다.
독서가 악덕이어도 좋다. 친척들 무릎에서 국한문혼용 삼국지의 한자를 읽으며 칭찬받던 어릴 때의 나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개미』를 읽으며 내가 쓰고 싶었던 장면을 도둑맞았다고 울던 중학생 때의 나도, 그래도 문학을 읽긴 해야 하는데… 라며 매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집만 읽던 대학생 때의 나도, 와이프에게 화면 그만 보고 자라고 상냥하게 타박받는 지금의 나도, 독서가 악덕이라도 책 계속 읽을거야? 하면 읽을 거라고 말할 것이다. 책이 유익할 수는 있다. 그걸로 사람이 책을 읽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독서가 재미있어서 읽게 만드는 것만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독서보다 쇼츠가 재미있다는 사람에게 어떻게 책을 읽게 만들 것인가? 그것은 Kirsch도, 나도 대답하지 못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