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yCon JP 2025 후기

Jaeyeol Lee @kodingwarrior@hackers.pub

원래는 행사 후기를 남긴다하면 지나가는 느낌으로 짧막하게 엄청 건조하게 남기는 편이었는데요. 최근에 트친이 된 분들을 비롯해서 PyCon JP에 참여한 많은 분들이 글을 남기기도 했고, 한국인이 다녀갔다는 흔적도 남길겸,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되는 아카이브로서 기록을 남기고자 합니다.

Warning

전날 과음으로 인한 체력 없음 이슈(매일마다 술마심), 배터리 방전으로 인해 사진으로서 남긴 기록이 별로 없는 이슈 등으로 인해 분량이 다소 적을 수 있다는 점은 미리 양해부탁드립니다.

참가를 결심하다

2016년 쯤부터 였으니까 PyCon KR에는 10번째 참여하긴 했었는데요, 그러다보니 한국 파이썬 커뮤니티에는 나름 애정을 많이 가지고 있는 편입니다. 개인 후원자로서도 참여를 했고, 커뮤니티 후원사(vim.kr, fedidev.kr 등)로서도 부스를 운영해오기도 했었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가지 입장 상 Python 커뮤니티에 애착을 가지고 있어 왔던 것에 비하면 외국에서는 한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경력의 절반 이상을 Ruby로 밥 벌어 먹으면서 살다보니, 2023년 쯤에 RubyKaigi 2023에 참여하기는 했었던 것 같긴 하네요.

아무튼, 일본을 중심으로 해외 컨퍼런스에 꾸준히 참여하고자 하는 생각은 있었음에도 개인적인 일로 계속 미루기는 해왔었는데요. 최근, 회사도 그만두면서 자유의 몸이 되었고, 마침 PyCon JP 일정을 참여할 수 있는 여건도 되어서 저질러버렸습니다. 일본어 학습 수준으로 치자면, Duolingo로 모든 스테이지를 클리어한 상태이긴 했지만, 프리토킹이 잘 되냐랑은 거리가 있었지만요. 일단.... 참가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습니다. (사실은, 권한님을 포함해서 PyCon JP에 같이 가자던 트위터 지인들의 유혹이 너무 강하기도 했습니다)

아무튼, 8월 18일. PyCon JP 티켓과 함께 일본행 비행기 티켓을 거하게 질렀습니다.

행사 시작 전 (09/24) ~ PyCon JP day0 (09/25)

오코노미야키

09/24 오후 3시, 배권한(darjeelingt)님과 청주공항에서 같이 히로시마에 도착. 09/24 오후 6시, 숙소 근처 Kanransha라는 곳에서 오코노미야키를 먹었습니다. 09/25 오후 1시, 김도윤님/이영은님/홍남수님을 포함한 한국에서 오신 분들과 같이 붕장어덮밥을 먹으면서 히로시마 원폭돔 구경하고 적당히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09/25 오후 6시 30분. Findy 에서 진행하는 DrinkUp 파티에 참여했습니다. 일본어로 프리토킹이 잘 되는 수준은 아니었어서 영어로 어설프게나마 대화하긴 했었는데요, 바로 앞에 있던 분이 Findy 쪽에서 근무하시는 데이터 엔지니어셨습니다. 자기소개에 Vim을 적어놓긴 했어서 언어를 넘어선 내적친밀감을 나누곤 했습니다.

"Oh, Do you use Neovim?" / "YEAH!!!" / "You also use Wezterm?" / "YEAH!!!" - Findy 데이터 엔지니어분의 PyCon JP 후기

tiangolo 선생님과 한 컷

FastAPI 개발자인 tiangolo 님께서도 오셔서 사진도 같이 찍었습니다.

2차 뒷풀이Python Asia Organization 주관의 Drink Up 파티에 갔습니다. tiangolo 님도 마침 보였어서 한국 얘기를 많이 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3차 뒷풀이도 갔습니다. 이 때는 잔뜩 취했던 것 같은데, 가장 선명한 기억이라면...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Emacs 쓰는 사람이었어서 위기감을 느꼈던 것 같아요. 그 당시, 맥주를 사주신 타카노리님도 Emacs 쓰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기억...

PyCon JP day1 (09/26)

PyCon JP 첫번째 날입니다. 전날에 과음했어서 그런지, 늦게 일어났고, 첫 세션시간은 놓치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행사장까지 부랴부랴 뛰어갔습니다.

Dress Code: How Python Writes the Future of Fashion

"Dress Code: How Python Writes the Future of Fashion" : 행사 당일의 첫번째 세션이었는데요. 어떤게 있는지는 몰랐고, 그냥 영어로 된 세션 아무거나 듣자라는 마음가짐으로 들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랬던 것 치고는 내용이 제법 만족스러운 내용이었습니다. 패션업계에서 Python이 어떻게 유용하게 쓰일 수 있는지에 대해서 소개하고 있었어요. sin 함수를 응용한 노이즈 생성 함수/생성형 AI/자수패턴 생성 DSL 등등을 응용해서 어떻게 제품을 만들 수 있는지 소개하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マイエディタのすすめ

"マイエディタのすすめ" : Neovim 매니아로서 "エディタ"라는 키워드에 꽂혀서 들으러 갔던 것 같아요. 발표자분이 "크로스런타임으로 동작하면서, 마크다운 포맷으로 글을 작성하면 docx 파일로 출력을 뽑아주는 에디터"를 개발하셨더라구요. "에디터 자체 개발"은 그 자체 만으로도 관심있는 주제이긴 했었는데, 발표자분이 '개발'이 본업이 아니고 히로시마에서 일하는 '변호사'셨더라구요.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자기만의 도구를 만들어가게 된 일화를 소개해주셨는데, 일부 내용은 놓쳤지만 재밌게 들었습니다. (에디터 소개 페이지)

이 이후로는 들을 만한 세션이 더 이상 없는 것 같아서, 스폰서 부스 위주로 돌아다니긴 했던 것 같은데 배터리가 다 떨어져서 사진을 찍은 기록도 없네요. 유감.

tiangolo님이 키노트 연설하는 모습

그리고, 행사 마지막에는 FastAPI의 창시자인 tiangolo 님의 키노트 세션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tiangolo 님의 개발철학을 전반적으로 알 수 있었고, 여러모로 본받을 만한 부분이 많았습니다. 기억에 남는 어록이 있다면, "Innovation is a side effect of solving problem"

키노트 세션이 행사 마지막에 배치가 되어있던 것도 독특하다고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참고: PyCon KR은 키노트 세션이 행사 맨 앞에 배치되어 있어서, 키노트 세션 들으려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달려가야함.)

PyCon JP Official Party

저녁에는 Official Party에 참여했고, 전날 DrinkUp 파티에서 안주를 별로 못 먹었던 관계로 뷔페 음식만 정신없이 퍼먹었던 것 같습니다. 네트워킹은... 그 날 따라 에너지가 별로 없었어서 듣기만 했었던 것 같습니다.

PyCon JP day2 (09/27)

PyCon JP 두번째 날입니다. 무리한 수준으로 마신 편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숙취가 있었습니다. 결국 지각을 했습니다.

How I Built a CPU for Fun (and Didn’t Learn Verilog)

"How I Built a CPU for Fun (and Didn’t Learn Verilog)" : Verilog 같은 HDL를 쓰지 않고, Python 기반의 DSL 라이브러리(Amaranth)를 응용해서 직접 CPU를 개발한 후기를 소개하는 세션이었습니다. 학부 다니던 당시, 논리회로/컴퓨터구조 수업을 들을 당시 이론 위주로만 수업 듣기만 하고, 다른 학교 다니던 친구들처럼 Verilog 같은 HDL로 실습을 해보진 않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완전 다른 세상처럼 느껴지고 신기하다고만 느꼈던 세션이었습니다.

Webアプリケーションにおけるパスルーティングアルゴリズムの解剖

"Webアプリケーションにおけるパスルーティングアルゴリズムの解剖" : 라이브러리/프레임워크 내부 구현원리를 뜯어보는 세션을 좋아했어서 들어갔습니다. 요청 헤더의 path 필드를 읽어서 응답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라우팅 알고리즘이 어떻게 동작하는지 그리고 그 중에서도 VM 방식/Trie 방식 각각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 소개하는 세션이었습니다. 일본어 세션이어서 완전히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떤 식으로 접근해서 발표 준비를 해볼까 참고하고자 하는 차원에서 들었습니다. 유튜브가 공개되면 다시 한번 보게 될 것 같긴 합니다.

Python製RDBMSで理解する、データベースのピース 〜コードのステップ実行とヘックスビューアーで内部動作を追ってみよう〜

"Python製RDBMSで理解する、データベースのピース 〜コードのステップ実行とヘックスビューアーで内部動作を追ってみよう〜" : 이건 어떻게 보면 개인연구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는데요. 말 그대로, 어떤 웹 개발자분이 '사이드프로젝트'로서 Python 기반으로 DBMS를 밑바닥에서부터 구현했고, 그걸 어떻게 구현할 수 있었는지 코드와 같이 스텝 바이 스텝으로 설명하는 그런 세션이었습니다. DBMS는 어떤 부품들(Lexer, Parser, Planner, Buffer Manager, ...)로 구성되어있고 그것들을 어떻게 구현했는지 소개했습니다. 밑바닥에서부터 이해하고자 하는 일념으로 사이드프로젝트로 이렇게 만드는 분을 보게 되니 스스로 많이 돌아보게 되기도 했습니다. 난.. 정작... 좋은 교재를 찾기만 했었는데.....

2일차 키노트

2일차 키노트 연사자는 『100일 챌린지』 라는 책을 쓰신 오츠카 아미님이셨습니다. 발표 내용 전반적으로는 알고 있는 내용은 많았고, 책이 출간되고 그 이후까지의 스토리가 담긴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사실 일부는 못알아들어서 놓친 부분이 많았습니다.) 변동사항이 있었다면, 작년 12월쯤부터 1인 회사를 차리게 되었다는 것이고, 여기저기서 인터뷰를 많이 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대학교를 졸업한 지 그렇게 오래 지나지 않은 사회 초년생인데, 정말 많은 고생의 흔적이 느껴지는 발표였습니다. 키노트 발표를 앞두고 "100일 챌린지"를 하고, 앱스토어 출시까지 해서 키노트 현장에서 시연까지 했습니다. 아이폰 유저가 아니라 써보진 못했습니다. 『100일 챌린지』 라는 책을 읽으면서도 많은 생각이 들긴 했었는데, 확실히 "실천을 꾸준히 해내는 사람은 뭔가가 다르구나" 라는건 느껴지더군요. 『100일 챌린지』 독서 후기 타래는 여기를 참고해보시면 되겠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는 PKSHA Technology에서 진행하는 DrinkUp 파티로 갔습니다. 그래도 전날보다는 에너지가 넘쳐나는 편이었는데, 일본어가 원활하게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나마, 한국에 자주 여행간다는 엔지니어분이 계셔서 '서울 맛집 전문가의 위상이라도 보여줘야겠다' 싶어서 구글맵스 북마크에 추천하는 맛집 몇 개 찍어줬습니다.

DrinkUp 파티가 끝날때 쯤 2차 뒷풀이로 가라오케 같이 갈 사람을 구인을 해서 가라오케도 체험했습니다. "한국인은 노래방 이렇게 즐긴다"의 표본을 보여줬는데, 반응은 좋았던 것 같아요. 새벽 1시쯤까지 놀다가 귀가했습니다.

그 후 (09/28)

PyCon JP 행사가 끝난 다음 날에는 Sprint 행사가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PyCon 하면 Sprint 행사가 또 빠질 수 없어서 일단 그냥 신청하긴 했었는데요. Day2 뒷풀이에서도 너무 신나게 놀았던 탓에, 오전 11시 30분 쯤에 스프린트 행사장에 늦게 도착했습니다. Sprint에 본격적으로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다른 테이블에서 어떻게 Sprint를 진행하는지 관찰만 했던 것 같습니다. 한국으로 치면, 그냥 "모각코(여서 딩)"하는거랑 크게 다를 건 없는데요. 진짜 오픈소스 기여를 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테이블도 있었고, 어떤 테이블은 행사와 관련된 행정적인 업무를 하는 분도 계셨고, 어떤 테이블은 진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거 하고 있었습니다. 각자 자기 할 일 하는 테이블에 앉아서 상황 좀 지켜보다가 권한님(darjeelingt) 나오실 때 따라나가서 히로시마 관광하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저녁에도 애프터파티가 있어서 맥주 맛있게 얻어마셨습니다. (타카노리님, 정말 감사합니다)

총평

RubyKaigi 2023 이후로 처음으로 외국에서 참여하는 개발자 컨퍼런스인데요. RubyKaigi 때도 재밌게 즐기긴 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나마? 본격적으로? 2차/3차 뒷풀이도 가면서 다른 외국인 개발자들과 네트워킹을 할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참여하면서도, 몇가지 인상깊은 포인트가 있었습니다.

외국인이 누릴 수 있는 컨텐츠가 많았다. 일본어가 그렇게 유창하지 않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가능한 선택지는, 영어로 된 세션을 듣는 것입니다. 국내인의 입장에서는 자국어로 진행하는 세션을 들으면 되지만, 외국인의 세션을 들을 일은 잘 없습니다. 관심있다고 해도 언어적인 장벽을 넘어야 합니다. 일본은 특히 자국어로도 충분히 정보를 입수하기 수월할 정도로 내수환경이 뛰어난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PyCon JP에서는 영어로 된 세션이 적지 않은 비중으로 있었습니다. 심지어 외국인 연사자 비중도 제법 있었고, 외국인 오거나이저 분들도 여럿 계셨습니다. 여러모로, 곳곳에 외국인들을 위한 배려가 돋보였습니다.

비교적 다양한 주제의 세션들이 있었다. 그리고 RubyKaigi처럼 기여자가 직접 설명하는 라이브러리/코어 구현에 대한 세션도 있었고, 에디터를 직접 개발한 변호사 분의 세션이라던가, 1000명 규모의 커뮤니티를 빌드업하신 의료물리사 분의 세션이라던가, RDBMS를 직접 파이썬으로 구현해보신 분의 세션이라던가 제법 다양한 주제의 세션들이 있었습니다. PyCon KR도 나름 재밌게 즐겨오긴 해왔지만, 확실히 배리에이션이 다르다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네트워킹의 기회가 많았다. 히로시마 입국일, 출국일을 제외하면 거의 매일마다 네트워킹을 했던 것 같습니다. Day0에는 Findy에서 DrinkUp Party, Day1에는 Official Party, Day2에는 PKSHA에서 DrinkUp Party, 그리고 그 다음날에도 네트워킹 파티가 있긴 했었습니다. 이왕 일본에 온 김에 아는 사람을 조금이라도 더 늘리고 싶었고, 일본에서의 일자리도 생각하고도 있었던 입장에서 좋은 기회를 많이 얻을 수 있었습니다. 네트워킹 자리가 만들어진 덕분에, tiangolo님과 사진을 찍을 수 있었고, 어떤 회사와 캐주얼 면담 제안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어딘지는 비밀) + 2차/3차 뒷풀이도 좋았습니다

다음에도 참여하게 된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갈 예정임)

  • 보조배터리를 챙겨가야겠다.
  • 동전지갑을 챙겨가야겠다.
  • 일본어 연습을 제대로 해야겠다. (Duolingo로는 한계가 있었음)
    • 근데, 일본인 개발자들과 캐주얼하게 교류할 수 있는 Discord 서버 같은게 있으려나....? Python 개발자들 비중이 좀 더 있으면 좋을 것 같다.
  • 영어도 역시 회화가 원활하게 되는 수준으로 제대로 연습해야겠다.
  • 발표자로서도 꼭 지원을 해봐야겠다. (Python 쓰는 일자리를 구한다면....)

한편으로는 "PyCon KR도 외국인이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늘어나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기도 합니다. 행사 컨텐츠를 준비하지는 못하더라도, 외국인이 어울려서 놀 수 있는 자리를 준비하면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들고 있네요.

연락은 열려있습니다.

이번 PyCon JP에서의 경험은 너무 좋았기도 하고, 앞으로도 꾸준히 참여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에 참가한다면 만반의 준비를 해서 갈 계획입니다. 이번 PyCon JP는 한국에서 그룹챗 인원 기준 6명이서 모여서 갔었는데, 다음에 참여한다면 한 15명 모여서 같이 가볼까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일본인 지인도 좀 더 많이 알아두고 싶습니다.

아, PyCon JP 또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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