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여 년 전, 지인이 나에게 이 〈카페 알파〉라는 작품의 존재를 알려 주었다. 그 뒤 몇 년 주기로 몇 번이나 다시 보았으니, 이제 제1화의 흐름은 다 외워 버릴 만큼 익숙하다. 그러나, 그럼에도, 긴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보아도 이 장면이, 그리고 이 장면의 전후로 일관적인 담담함과 절제와 고요가, 일으키는 울림은 여전하다.

이 장면은 표지와 목차 등을 제외하고 제1화의 실질적 내용에서 12쪽만에 나타난다. 지금이야 초고속 인터넷이 세계 곳곳에 깔려 있고 창작 콘텐츠가 연일 봇물로 쏟아지는 세상이지만, 이 장면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1994년은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이야기를, 이런 아름다움을 묘사할 수 있다는 것 자체를 상상도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긴 세월 이 작품에 쏟아진 찬사가 증거다.

이 걸작을 그려낸 거장 아시나노 히토시 선생도 벌써 환갑을 넘겼다. 〈코토노바 드라이브〉 이래 알려진 작품 활동이 없다. 만화를 그린다는 활동의 노동집약적 성격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신작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저물어 가는 세계에 "옛 길의 흔적"을 밝히는 가로등처럼 켜져 있던 불빛도 그렇게 사라진다.

AI가 그의 작풍을 흉내내어 그럴싸한 뒷이야기를 만들어 주는 것만이 유일한 가능성인가? 공교롭게도 〈카페 알파〉의 주인공이 AI다. 멸망의 시대는 아시나노 선생이 예견한 것보다 훨씬 비관적인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듯도 하다...

아시나노 히토시의 만화 〈카페 알파〉 1권 18쪽 장면. 도로가 있었던 곳이 수면 상승으로 수몰되어, 가로등이나 교통표지판 등이 수면 위로 솟아 있다. 스쿠터를 탄 여성이 수몰된 길 앞에 멈추어 서서 난감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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