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이 격앙된 목소리로 대국민 담화를 하고 있었다. 나와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멍하니 화면만 봤다. 정말 '계엄'이라는 단어을 꺼내는지 직접 확인해야 했다. 종북좌파니, 반국세력이니하는, 기념일 연설마다 반복하던 헛소리에 이어 "비상계엄을 선포합니다"라는 그 말이 나왔다.

최루탄이 터지는 6월 항쟁 자료영상들과 군인이 민간인을 폭행하는 5.18 광주에서의 사진들이 머릿속에 스쳐갔다. 오늘 이 시간부로 끝을 알 수 없는 암흑기가 시작된다는 생각부터 수 십년이 지난 훗날, 독재가 당연해진 한국 사회에서 이 순간을 돌아보는 상상까지 했다.

아버지는 국회가 계엄을 해제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지만, 나는 계엄을 해제해도 우리가 절대로 계엄 이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만 같아서 암담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작년 12월 3일 밤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윤석열이 파면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지만, 그 결정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 자체가 위협이 된다. 시간이 지날수록 친위 쿠데타를 옹호하는 이들은 점점 고무되어 응집하고, 무관심한 이들은 피로감으로 인해 흩어져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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