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는 혐오할 수 없다"는 환상

“강자는 혐오할 수 없다”는 말은 환상이다.
그 말은 마치 누군가를 혐오해도 된다는 면허처럼 쓰인다.
강자는 이미 충분히 말했고, 충분히 들어왔고,
우리는 이제 말할 차례라는 식으로.

하지만 그런 말은 언제나 누군가의 고통을 지운다.
혐오는 방향이 아니라 행위다.
그게 누구를 향하든, 혐오는 누군가를 인간 이하로 취급하는 행위다.
강자라서 괜찮은 혐오는 없다.

사람은 언제나 단일한 정체성으로 살아가지 않는다.
여성도, 남성도, 약자도, 때로는 서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우리는 가끔 피해자였고, 또 가끔은 누군가에겐 강자였다.
이걸 인정하지 않으면, 결국 또 다른 차별을 반복할 뿐이다.

문제는 서로를 들으려 하지 않는 데 있다.
우리는 듣는 걸 멈췄고, 말하는 데만 익숙해졌다.
공감은 요구하지만 제공하지 않고,
이해받고 싶어 하지만 이해하려 들지 않는다.

혐오로 정의를 세울 수는 없다.
혐오로는 복수는 가능해도 회복은 불가능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우리가 옳다”는 선언이 아니라,
“다시 듣겠다”는 결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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