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와보니 내가 죽어있었다 (공포주의)
집에 와보니 내가 죽어있었다.
아니, 나는 분명 살아있다.
뺨을 타고 흐르는 땀과 바싹 말라가는 입술,
불과 몇십 분 전까지 전철에서 내려 귀갓길에 올랐다.
분명 내 신용카드 기록이 남아있을 것이다.
그럼 저것은 무엇인가.
내가 잠시 착각을 했나 싶어서
"나"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들여다볼수록 나와 "나"의 경계가 희미해진다.
이목구비의 모양과 위치, 심지어 있는줄도 몰랐던 목 옆의 점까지.
소름돋게 똑같이 재현했지만 어딘가 알 수 없는 이질감과 불쾌함.
이게 얼마 전까지 내 집에서 뻔뻔히 살아숨쉬던 생명체였다는 사실까지
불쾌함과 역겨움이 목구멍 너머로 올라온다.
그것도 잠시 나는 내 동거인을 찾는다.
아니, 찾을 필요도 없었다.
그 역시 거실 한복판에 쓰러진 "나"와 같이
피투성이인 채로 쓰러져 있었으니까.
손에는 커터칼이 들려있는 걸로 보아,
동거인은 자기 손에 잡히는 것 아무거나 들어서
끝까지 투항한 것으로 보인다.
아니,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동거인이 커터칼을 들고 투항했다면
이 정도로 출혈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둘의 목숨을 끝낼 정도의 흉기는 보이지 않지만,
동거인이 커터칼을 가지고 투항한 게 전부라고 하면
저기 있는 "나"는 죽은 게 맞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