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시오니즘, 서구의 실패 장정일 (시인·소설가) 2025-08-16 05:08 www.lawtimes.co.kr/opinion/210531

(17) 시오니즘, 서구의 실패

(17) 시오니즘, 서구의 실패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강, 2024)에는 네게브 사막의 이스라엘 전초 기지를 책임진 이스라엘군 소대장이 부하를 상대로 행한 인상적인 연설이 나온다.   “우리는 망명하는 수많은 우리 민족을 수용할 만큼 넓은 땅을 모른 척 놔둘 수 없다. 지금은 잠입자들과 한 줌의 베두인들, 낙타들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 황무지처럼 보이는 이 땅이 실로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전에 지나갔던 곳이다. 누구도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우리보다 더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넓은 지역을 지금처럼 황폐한 무인 지역으로 놔두지 않고 번성한 문명 지대로, 교육과 발전과 문화가 꽃피는 번창하는 중심지로 탈바꿈시키는 데 성공할 수 있다. 이 모든 일을 실현하려면, 우선 이 일대의 가장 포악하고 가장 파괴적인 적들을 무찌르고, 이곳을 최대한 잘 지켜내야 한다.”   소대장의 연설은 이스라엘 정부 홈페이지에 게시된 이스라엘 공식 역사의 핵심과 일치한다. 이스라엘 정부는 최초의 시온주의 정착민이 팔레스타인 땅에 도착했던 1882년에 그 땅에는 아무도 살지 않았다고 강변한다. 시온주의자들이 도착하기 이전에, 팔레스타인 땅은 몇 세기 동안 사람이 살지 않는 황무지였다는 것이다. 이 날조된 신화가 이스라엘 존립의 절대근거라는 것은 이츠하크 라빈(1922~1995)의 암살이 잘 보여준다.   라빈은 1941년부터 영국 지배하의 팔레스타인에서 유대인 준군사조직인 하가나에서 활약했고, 몇 차례의 중동전쟁에서 공을 세웠다. 제5대 이스라엘 총리가 된 그는 총리 재임기에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모색하기 위해 야세르 아라파트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의장과 오슬로 협정을 체결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기만적인 협정이었으나, 두 사람과 이스라엘 외무부장간 시몬 페레스는 1994년 노벨평화상을 공동수상했다. PLO와 후속 협상을 진행중이던 라빈은 크세네트(이스라엘 의회)에서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에 돌아와 민족을 세웠으나, 빈 땅에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여기에는 팔레스타인인들이 있었습니다.” 라빈은 그 연설 후 몇 주 뒤인 1995년 11월 4일, 유대교 근본주의자이자 극우주의 청년의 총탄을 맞았다. 라빈은 팔레스타인이 “땅 없는 민족을 위한, 민족 없는 땅”이었다는 이스라엘 건국 신화를 훼손했기 때문에 동족이 손에 죽어야 했다.   이스라엘 건국 서사는 팔레스타인인을 팔레스타인 역사와 지도에서 지우려고 한다. 이스라엘 정부와 시온주의자들은 팔레스타인이 자신의 땅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구약 성서를 내세운다. 하지만 구약 성서는 현재 이스라엘이 들어선 팔레스타인 일대에 유대인만 살고 있었다거나, 이스라엘이 봉쇄 중인 가자 지구가 유대인의 것이었다고 말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정복하라’고 말했지, ‘가나안을 회복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성서》는 토지 대장이 아니다. 비비안 포레스터가 《왜 강대국은 책임지지 않는가》(도도서가, 2025)에서 반문했듯이, 모든 민족이 원래의 고향에 따라 세계 지도를 다시 그려야 한다면, 우리는 신대륙(아메리카) 발견 이전, 또는 “로마 정복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가야 한다.   가자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공습. <사진=위키미디어커먼즈>   첫 번째 신화만큼 널리 알려진 또 하나의 건국 신화는 평화로운 이스라엘의 건국을 아랍 세계가 일치단결하여 말살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이어지는 신화는, 이스라엘은 아랍 세계와 평화롭게 지내면서 팔레스타인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할 자세가 되어 있었으나, 증오를 먹고 사는 아랍 사람들로부터 생존의 벼랑으로 몰리는 전쟁을 강요당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중동에서 유일하게 핵무기를 갖고 있는 이유도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으로 설명된다(부연하면, 중동에서 이스라엘만 핵을 갖고 있다는 것이 중동 평화를 위협한다. 일부 학자들은 한 지역에서 한 나라만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이 여러 나라가 핵무기를 갖고 있는 것보다 위험하다고 주장한다.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봉쇄나 6월 13일 이스라엘 공군의 이란에 대한 기습 공격은 이 주장을 설득력 있게 해준다). 하지만 시온주의자나 이스라엘은 한 번도 고립된 적이 없다.   1917년 영국 외무장관 아서 벨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정책을 내놓았다. 시온주의 운동가들은 중동 전역을 지배하고 있던 영국에 협력하면서 유대 국가의 기반을 쌓았다. 더 많은 유대인을 팔레스타인에 유입시키고, 그들만의 경제권을 만들고, 무장력을 키웠다. 영국의 지원 아래 유대 국가가 팔레스타인에 세워진다는 것을 알게 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들은 1937년 10월부터 1939년 여름까지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벌였다. 이때 팔레스타인 독립 투쟁을 진압하는 경비견 역할을 한 것이 이츠하크 라빈이 몸담았다던 유대인 정착촌의 준군사조직들이다.   1947년 11월 30일부터 영국군이 팔레스타인에서 철수하자, 그동안 영국군에 편재되어 있던 유대인 부대와 유대인 준군사 조직은 곧바로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마을을 공격했다. 시온주의 군사 집단은 1948년 봄, 팔레스타인 안에 있는 아랍인 마을을 모두 파괴하는 ‘달렛 구상(Plan Dalet)’을 실행했다. 4월 9일 시온주의 무장단체는 예루살렘 근처 데이르 야신 마을의 주민을 몰살시키고 여성들을 성폭행 했다. 이스라엘은 그해 5월 14일 건국을 선포하고, 이튿날 유엔이 확정해준 이스라엘 땅에서 팔레스타인을 추방하는 군사작전을 다시 벌였다. 팔레스타인인들이 ‘나크바(재앙)’라고 부르는 이날, 40만 명 넘는 팔레스타인 난민이 새로 생겼다. 이스라엘 건국 전후에 벌어진 두 단계의 나크바로 생긴 75만 명의 난민은 다시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팔레스타인은 공동체가 없는 무주지(無主地)도, 사람도 식물도 살 수 없는 황무지도, 문화가 없는 야만의 땅도 아니었다. 라시드 할리디는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열린책들, 2021)에서 유대인 초기 정착자들이 기록해 놓은 여러 자료는 시온주의자들이 만들어놓은 대중적 신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한다. “대중적 신화는 팔레스타인인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집단적 의식이 부재했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최근 들어 유대인의 민족자결에 대한 터무니없는 반대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정체성은 근대의 정치적 시온주의와 거의 정확히 동시에 나타났다. 반유대주의가 시온주의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시온주의의 위협 역시 이런 자극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제1차 중동전은 반유대주의 보다 형제(팔레스타인인)들이 고향에서 쫓겨난 데 대한 아랍 국가들의 개입이라는 성격이 더 크다. 하지만 7개국으로 이루어진 아랍 연합군의 전력은 이스라엘군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할리디의 말이다. “영국인들이 1948년 팔레스타인에서 떠났을 때, 유대 국가 기구를 새롭게 창조할 필요가 없었다. 이미 수십 년간 영국의 보호 아래 그런 기구가 작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7개국의 아랍 연합군보다 이스라엘군이 병력과 무장에서 앞섰다.   시온주의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민족국가를 설립하려는 민족주의 운동으로 설명되지만, 그것은 시온주의가 갖고 있는 본래의 성격을 은폐한다. 벨푸어는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만들자는 제안을 하면서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는 선주민은 보지 않았다. 어느 땅을 누구에게 떼어 준다는 사고방식은 식민화가 보편화된 시대에는 전형적이었다. 시온주의자는 팔레스타인의 선주민보다는 서구인과 더 가까웠기 때문에, 영국의 식민주의자와 시온주의자는 팔레스타인을 식민화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갖지 않았다.   독일의 나치는 600만의 유대인을 학살했는데, 그 시기에 반유대주의 인종학살을 획책하거나 반유대주의를 방관한 정부는 나치 말고도 많다. 문제는 홀로코스트를 저지르고서도 서구가 반유대주의를 반성하고 근절할 그 어떤 집단적인 운동을 벌인 바 없다는 것이다. 대신 시온주의자를 도와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창설하는 것으로 아랍인들에게 자신들의 반유대주의를 대신 짊어지게 만들었다. 《가자란 무엇인가》(두번째테제, 2024)를 쓴 오카 마리가 잘 지적했듯이, 시온주의는 종교적 열정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서구가 반유대주의를 극복하지 못한 결과로 생겨난 부산물이다.   2008년 12월 7일,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로켓 공격을 최소화한다는 명목으로 가자 지구를 청소하는 ‘캐스트 리드(Cast Lead)’ 작전을 벌였다. 이 작전 기간에 팔레스타인 난민촌에 있던 1400여 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스테판 에셀은 2009년, 아내와 함께 가자 지구를 두 번째 방문하고 나서 《분노하라》(돌베개, 2011)에 이렇게 썼다. “가자 지구, 그곳은 150만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창살 없는 감옥이나 다름없었다.” 35개국으로 번역되어 3500만 권이 팔린 이 책에서 에셀은 이스라엘 건국의 또 다른 신화인 홀로코스트의 가치를 의심했다. “유대인들이 언제까지나 이렇게 전쟁범죄를 자행할 수 있다는 것은 참기 어려운 일이다. 어떤 민족이 자신의 역사에서 교훈을 얻은 예는 지금까지 찾아보기 힘들다.”   오카 마리는 《가자란 무엇인가》에서 “죄수가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하는 이런 감옥이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스라엘이 인종학살을 저지르는 나치가 된지는 오래다.     장정일(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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