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여름, 나는 경기도 부천에서 한 농인 부모의 딸로 태어났다. 남아선호사상의 영향으로 남아 출생성비가 여아 100명당 116.8명에 육박하던 해였다. 많은 여자아이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죽었다. 나 역시 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여자라서 안 된다며 대를 이을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부모는 입술 대신 손짓과 표정으로 딸을 낳은 후에 아들을 낳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지만 할머니의 생각은 달랐다. '장애인'이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울 텐데 아들 딱 하나만 낳아 기르라고 했다. 엄마는 손을 내저었다. 성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엄마는 지금까지 그래왔듯 온전히 당신의 결정으로 나를 낳았다.
-이길보라『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어서』중에서

0

If you have a fediverse account, you can quote this note from your own instance. Search https://qdon.space/users/yijuckhangwe/statuses/116204976579015215 on your instance and quote it. (Note that quoting is not supported in Mastod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