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도메인 네임 레지스트라 옮기면서 트래블월렛으로 결제를 해 봤는데, 괜찮았다. 항상 카드로 해외 결제를 할 때마다 불만이었던 게

  • 환율은 얼마인지
  • 수수료는 얼마인지
  • 내 통장에선 언제 정확히 얼마가 빠져나가는 건지

이런 게 다 불투명하다는 것이었다. 찾아보면 매입시점이 어떻고 전신환매도율이 저떻고 온갖 복잡한 이야기에 내가 굳이 이걸 보고 있어야 하는가 자괴감 들고 괴롭다. 미리 원하는 통화로 원하는 만큼만 환전해서 긁을 수 있고 그 과정이 투명하게 드러난다는 게 마음에 든다.

실물 카드도 원래는 예전에 잠깐 출국했을 때 쓰려고 발급받은 건데, 실제로 환전부터 결제까지 너무 매끄럽고 빠르게 잘 되어서 놀랐던 기억이 있다. 앱이랑 기가 막히게 실시간으로 잘 엮여 있고, 앱 자체도 깔끔하게 잘 만들었고. 카드를 편의점 ATM 에서 즉시 찍어낼 수 있다(…??)는 것도 문화컬처충격쇼크였다. 근데 집에서 온라인 결제할 때도 이렇게 편할 거라고 생각 못했다. EUR 이랑 USD 둘 다 결제해 봤는데, 아주 깔끔하게 잘 되었다.

트래블월렛 바이럴 아닙니다. 내돈내산입니다. 저는 트래블월렛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임.

예를 들어 어제 xtendo.org 의 레지스트라를 INWX 로 바꿨다. 그래서 도메인 네임 트랜스퍼를 하는데,

  • INWX 에서 EUR 12.00 을 결제하라고 뜬다. (독일에 있는 inwx.de 로 가입했다)
  • 그러면 트래블월렛 앱으로 들어가서 지갑에 EUR 12.00 채워넣기를 한다.
    • 이때 내 은행 계좌에서 KRW 얼마를 출금하는지 현재 환율로 정확하게 알려준다. 이 환율은 매매기준율이다.
    • 수수료도 붙지 않는다. (USD, JPY, EUR 은 수수료 없음)
  • 거의 즉각적으로 충전이 된다. 내 지갑에는 EUR 12.00 잔고가 생긴다.
  • 이제 INWX 에서 트래블월렛 카드 번호 넣어서 결제하면 바로 결제가 되고 EUR 12.00 가 지불된다.
  • 이제 트래블월렛 앱에서 "카드활성화"를 끈다. (?!) 그러면 이 카드번호의 결제는 막힌다.

얼마의 KRW 가 얼마의 EUR 가 되고, 그게 어떻게 지불되는가 하는 과정 전체가 완전히 투명하다. 이중환전, DCC 뭐 이런 것도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무엇보다 앱 UX 가…

실제로 트래블월렛이 뜬 뒤로 시중은행에서도 트래블 어쩌고 하는 비슷한 카드 많이 내놨고, 수수료 등의 조건은 트래블월렛보다 나은 것도 많다. (트래블월렛은 KRW 에서 USD/JPY/EUR 로 환전하는 수수료가 없지만, 반대로 USD/JPY/EUR 잔액을 KRW 로 환전하는 수수료는 있다.) 그런데, 아무리 몇 푼을 우대해 줘 봤자 앱 UX 만은 트래블월렛을 못 따라온다고 다들 후기에서 지적하는 것이다.

얼마나 편하냐면 나는 예전에 일본 갔다가 자판기에서 150 엔짜리 마실 거 사려고 할 때도 트래블월렛 앱 켜서 JPY 150 환전한 다음 카드 갖다 댔다. 나도 내가 그런 짓을 할 줄은 몰랐다.

이건 앞으로도 트래블월렛의 독보적 강점으로 남을 가능성이 꽤 있다.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의 UX 라는 것은 조직의 의사결정구조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기존 은행과 카드사의 간부들이 나쁜 사람들이라서가 아니다. 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여건에 묶여 있다. 과감하게는 할 수 없다. 법령과 조직구조의 쇠사슬을 몸에 칭칭 두른 채로, 그래도 매일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려고 매일 싸우는 것이다. (나는 그런 곳에서 중간관리자를 하고 계시는 분들을 존경스럽게 생각한다.)

아무튼 그 결과 내가 지금 현대카드 앱에서 QR 코드 결제를 하려고 시도해 보면, QR 코드 결제라는 명확한 목표를 갖고 하는데도 20초가 넘게 걸린다. 반면 트래블월렛으로는 "뭘 하든" 콜드스타트에서 5초 안에 도달한다. 실제로 현대카드 앱에서 메뉴를 열어 보면

  • 카드 이용 내역
    • 이용 대금 명세서
    • 최근 이용 내역
    • 할부 이용 내역
    • ...
  • 카드 관리
    • 보유카드 목록
    • 간편결제 등록
    • 생활 요금 결제 등록
    • ...

뭐가 한없이 나오고 기분이 막막해진다. 나는 현대카드에 있는 신용카드도 하나뿐이고, 연결된 은행 계좌도 하나뿐이다. 그런데 이 미로에서 내가 원하는 기능을 빨리 찾을 자신이 전혀 없다. (그리고 이 메뉴를 보다 보면 이 앱을 개발하는 조직의 의사결정구조에 관해서 많은 것을 짐작하게 된다. 아마, 여기서 뭘 넣고 빼는 것은 중대한 문제일 것이다.)

반면 트래블월렛에서는 여러 통화의 잔고를 동시에 관리해야 하고, 카드도 실물 카드와 모바일 카드로 두 가지가 있고, 더 복잡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1년 동안 안 쓰다가 갑자기 꺼내서 써도 전혀 헤매지 않는다. 무엇보다, 빠르다. 앱 켜면 바로 켜지고 뭘 누르면 즉각 반응한다. 빠르다는 것은 그 자체로 기능이다. 킬러 피처다.

크윽… 이런 사악한… “원숭이 꽃신”이라는 동화 아십니까?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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