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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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않기 위해 씁니다. 읽기 위해 씁니다.

유성식당의 전통순대국밥(특)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가게정보

상호: 유성식당
인허가번호: 19720494001
주소: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 동학로 29
방문한 날짜: 2025년 6월
먹은 메뉴: 전통순대국밥(특)

뚝배기 안에 붉은 국물이 가득 차 있고, 산더미처럼 쌓인 돼지부속 고기가 그 위에 있고 후추가 뿌려져 있다.

생각

저는 순대국을 잘 못 먹습니다. 어릴 때 잘 먹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들고 보니 어릴 때 먹던 가게가 먹기 편했던 것이고, 많은 순대국 가게의 순대국에서는 돼지고기 부속고기에서 나는 냄새가 꽤 강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제가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순대국을 찾아 이곳저곳을 다니며, 전라북도 완주시 삼례읍에 있는 유성식당도 우연히 알게 된 이후 자주 다니게 된 곳입니다.

전주로 (자동차로) 출장을 다니는 분이 자주 들르신다는 트윗을 알게 된 이 곳은, 사진에 있는 전통순대국밥 기준으로 순대가 없으며, 붉은 국물인 상태로 서빙되며, 밥이 토렴되어 있습니다. 특으로 주문하면 돼지 부속이 사진처럼 고봉으로 나오며, 보통으로 주문해도 꽤 푸짐하게 건더기가 들어가 있습니다.

다대기를 풀어 넣는 과정 없이도 밸런스가 딱 맞는 국물과 냄새가 깔끔하게 잡혀서 부담없이 먹을 수 있는 것이 제가 아는 이 가게의 특징이었습니다만, 최근에 갔을 때는 조금 돼지 냄새가 느껴져 아쉬웠습니다. 돼지부속고기가 아낌없이 들어간 것 치고는 여전히 괜찮은 편이지만요.

한 가지 더 좋은 점은 아침 7시부터 하는 가게라는 점입니다. 서울에 사는 제가 현실적으로 그 시간에 먹을 일이 없긴 한데, 남부터미널에서 삼례 가는 시외버스를 타거나 혹은 KTX를 타고 익산역에서 내려 시내버스로 이동하여 11시 전에 먹을 수 있다는 건 좋습니다. 한 그릇 먹고 적당히 삼례 읍내, 삼례시장 청년몰, 삼례역사를 활용한 전시를 둘러보는 것도 좋아하는 활동이죠. 그러다 다시 시외버스를 타고 돌아오고. "순대국을 먹으러 거기까지 간다고?"같은 이야기를 종종 하게 됩니다만, 저는 다녀올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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팥장군의 가마솥팥빙수와 미숫가루팥빙수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가게정보

상호: 팥장군
인허가번호: 20190063471
주소: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 150(1층 3호 대조동)
방문한 날짜: 2025년 6월
먹은 메뉴: 가마솥팥빙수, 미숫가루팥빙수

상 위에 차려져있는 두 그릇의 팥빙수.

생각

저는 단팥을 좋아합니다. 단팥이 들어간 디저트라면 대부분 좋아하고, 팥빙수도 예외는 아닙니다. 팥장군은 가기 편해서 기회가 되면 들러서 팥빙수를 먹는 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그렇게 넓지 않은데, 가게에서 들여다보이는 주방은 가마솥을 비롯해서 팥을 가게에서 가공하고 조리하기 위한 기구들로 가득 차 보입니다. 팥을 메인으로 하는 가게라, 빙수 이외의 메뉴는 팥죽 등이기도 하지요.

그런만큼 팥빙수의 팥이 맛있습니다. 저는 디저트에서 '달지 않아 맛있어요'라는 말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이 가게의 팥빙수의 팥앙금은 달지 않고, 팥의 향을 즐길 수 있는 앙금입니다. 단 맛은 빙수를 먹다 보면 나오는 연유로 즐길 수 있지요. 저는 팥 디저트에 미숫가루나 호두 같은 걸 좋아하지 않아 별다른 걸 넣지 않고 먹고, 함께 간 와이프는 미숫가루가 들어간 빙수로 먹었습니다. 맛있습니다.

맥락과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저는 호두과자에 호두가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호두과자가 호두과자인 이유는 모양이 호두 모양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요. 호두가 악센트 정도면 모르겠는데, 호두를 씹느라 팥의 맛이 묻히는 게 저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가평 휴게소의 호두과자는 지역 특산을 쓰느라 그런지 잣이 들어가 있는데, 그건 꽤 좋았다고 생각하지만요.(잣은 아무래도 호두만큼 못 넣기도 하고….) 아무튼 팥. 팥이 드러나고 맛있는 게 저한테는 중요합니다.

미숫가루는… 맛이야 있는데, 가루상태로 흩날리는 게 별로 취향이 아니라서 디저트에 올라가 있는 걸 꺼리게 됩니다. 하지만 미숫가루를 먹는 다른 방법? 우유에 타 먹는다? 먹는 거야 맛있는데 섞는 거나 다 마시고 난 뒤 덩어리진 걸 처리하는 게 귀찮네요. 미숫가루를 깔끔하게 먹는 방법이 있기는 할까요? 정말 알 수 없는 음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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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Darkest Files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The Darkest Files
개발사: Paintbucket Games
배급사: Paintbucket Games
출시일: 2025년 3월 26일
장르: 추리, 법정

생각

『The Darkest Files』는 2차세계대전 이후 서독의 검사가 되어, 나치와 관련된 범죄를 기소하고 법정에서 진실을 다투는 추리 게임입니다. '나치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알려진 실존인물인 프리츠 바우어과 함께 일하는 (가공의) 검사가 되어, 실제로 있었던 사례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사건에서, 엇갈리는 진술들과 증거들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게임입니다.

『Through the Darkest of Times』에서 원래 사려고 했던 게임이 이건데, 사실 내용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괜찮아보이는 추리 게임이라서 사게 되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저는 2017년 이후로 역전재판 신작이 나오기를… 누가 단간론파 비슷한 거라도 만들어주길… 바라는, 탈선불가능한 추리 어드벤처를 좋아하는 사람이고 괜찮은 게 없는지 항상 목말라 있는 편입니다.

이 게임은 일단 게임으로서 호평하게 되는데, 증거가 모이는 과정에서 제시되는 여러 증언들과 증거들을 대조해서 사건에 대한 나(검사)만의 이론을 쌓아나가고, 이 증언을 듣고 세웠던 흐름을 다른 증언과 증거를 통해 수정하는 과정이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법정 파트는 채점장에 가까운데, 법정이라는 상황이 주는 형식미를 포함해 즐겁습니다. 이런 식으로 복수 증인의 모순되는 메세지 속에서 진실을 찾는 게임이 더 있으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 취향이 아닌 부분을 언급하자면, 이 게임이 탈선가능한 게임이라는 점을 들어야겠네요. '탈선가능한'은 제가 추리 게임에서, '당신은 이 부분을 잘못 플레이했기 때문에, 이 실수를 교정하기 위해서는 게임을 다시 해야 합니다'를 요구하는 게임을 가리킵니다. 사건이 끝날 때마다 채점지가 주어지는데, 이게 빈 칸이 있으면 아무래도 기분이 좋지 않지요. 그렇다고 게임을 굳이 다시 하고 싶냐 하면 아니거든요. 제가 다이얼로그를 읽는 건 좋아하지만, 30분 전에 읽은 이야기를 다시 읽는 걸 즐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 '퍼펙트 클리어'를 의식하며 게임을 하면, 도중에 뭔가 실수를 했다는 피드백을 받으면 바로 로드를 하게 되지요. 처음 할 때는 집중해서 읽었던 이야기를 다시 시도할 때는 대충 넘기게 되고요. 스토리 위주의 게임에서 이런 요소들은 가능한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이런 여지를 '자유도' 혹은 '진정한 선택'과 함께 없애버린 장르를 레일 슈터 장르에 빗대 레일 추리라고 부르는데, 이 게임은 그런 게임은 아닙니다. 검사인 내가 뭘 잘못해서 피고들에게 주는 형량이 달라지거나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게임일 수는 있겠지만요.

이 게임의 무게는, 이 게임의 많은 것이 실제로 있었던 일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서 올 것 같습니다. 실제로 나치 가담자를 법정에 세운 프리츠 바우어를 등장시키거나, 실제로 있었고 이후 법정을 거쳐 세상 빛을 본 사건들을 활용하는 것 이외에도 주인공과 동료들이 겪는 협박과 공격, 자신을 낳은 사회에 메스를 들이대는데 대한 내적 갈등 같은 것들을 실감나게 다루고 있습니다. 중년 남성이 말하는 사회 정의에 대한 독백 메세지를 영어 더빙으로 듣는 게 유치한 것 같습니까? 적어도 이 게임의 라이팅은 제게 그런 생각을 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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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일 추리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레일 추리는, 추리(수사) 장르의 게임 중에서 플레이어가 엔딩에 도달하는 경로나 그 과정의 선택지들이 거의 분기하지 않는 게임을 가리킬 때 제가 쓰는 말입니다. 나열적으로는 역전 재판 시리즈나, 단간론파 시리즈, 『도시전설 해체센터』, 『The Testament of Sherlock Holmes』 등을 들 수 있겠네요. 그렇지 않은 게임은 진구지 사부로 시리즈, 『Pentiment』 등이 떠오릅니다.

저는 이야기가 있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본 이야기를 다시 보는 걸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너는 이러이러한 선택을 '잘못' 했으므로, 이 이야기의 완성된 버전을 보고 싶다면 선택을 잘 해야 해"같은 이유로 다시 보는 건 질색이지요. 그 경우의 수를 다 체크할 시간도 없고, 그 과정에서 처음 볼 때는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스크립트와 감동하며 들은 성우의 연기를 감흥 없이 넘기게 되는 건 더 별로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미완의 엔딩이 주는 씁쓸한 맛이나 그 역경들을 뚫고 진짜 엔딩을 볼 때의 즐거움을 이야기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아닙니다. 결국 공략을 찾아서 모든 선택지마다 내가 '틀린'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지를 체크하며 게임을 하게 되지요.

PS2로 나온 진구지 사부로 게임을 한두 개 해 보다 잘 적응하지는 못하고, 역전재판이 나온 이후로 계속 여기 붙들려 있게 된 게 제가 이 분류에 붙들려있게 된 이유입니다.『레일 추리』라는 건 제가 역전재판과 진구지 사부로가 다른 게 뭐였을지를 생각하다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명시적으로 틀린 선택지를 고르면 안 되는 상황이 아닌 상황에서는 모든 선택지를 눌러보게 되고(순서에 따른 결과 차이가 없으며), 오답을 선택하는 것이 다른 분기로 이어지는 대신 체력을 깎으며, 이전 단계에서 무슨 아이템을 안 들고 와서 다음 단계에서 어떤 루트로 갈 수 없어지는 일도 없지요. 그냥 단순한 외길 진행일 수도 있지만, 좀 더 어릴 때의 저한테는 이게 훨씬 나았습니다. 지금도 크게 다르지는 않은 것 같고요.

『Pentiment』는 한 번의 플레이에서 할 수 있는 증거 수집이 제한적입니다. 정 반대의 디자인이죠. 한편으로는 실체적 진실을 묻어버림으로써, 누구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도 '오답'이라고 할 수는 없는 상태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재미있긴 했습니다. 하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수많은 선택지들이 있지만, 2회차를 할 생각이 별로 들지는 않습니다. 그냥 제가 선택한 그 선택지들이 제게는 유일한 이야기인 거죠.

최근에 플레이한 『The Darkest Files』는 이런 부분에서 최악인데, 어떤 실체적 진실이 있고, 그 정답에 근접하지 못한 수만큼 감점이 되고, 에피소드가 종료될 때 100점 만점으로 점수를 보여줍니다. 게임에 대해서 제가 좋은 평가를 한 거랑은 별개로, 이건 별로입니다. 감동적인 닫는 이야기를 본 다음에 100점을 목표로 다시 플레이하거나… 오답을 선택할 때마다 흐름이 끊기는 걸 감수하고 로드하거나… 둘 다 별로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The Darkest Files』가 레일 추리가 아니냐? 흠… 제가 좀 더 분류를 정확하게 만들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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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ck Detective: The Secret Salami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Duck Detective: The Secret Salami
개발사: Happy Broccoli Games
배급사: Happy Brocolli Games
출시일: 2024년 5월 24일
장르: 추리, 퍼즐

생각

『Duck Detective: The Secret Salami』는 에피소드 하나짜리 추리 게임입니다. 의인화된 동물들이 사는 사회의 오리 탐정인 주인공이 되어 사건을 해결하는 이야기입니다.

게임의 진행은 관찰과 대화를 통해서 키워드를 수집하고, 현재 단계에 알아야 하는 명제를 『The Case of the Golden Idol』식으로 키워드를 채워서 진행합니다. 명제를 완성시키면 상황이 바뀌고 새로운 키워드와 명제가 주어지며, 그것을 반복하는 식이지요.

서두르지 않고도 2시간 안에 엔딩을 볼 수 있는 짧은 게임이긴 하지만, 완성도 높게 짜여 있습니다. 캐릭터 구성과 영어 더빙도 좋고, 캐릭터를 '관찰'할 때 드러나는 디테일을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기본 일러스트에서는 드러나지 않던 재봉선이라던가, 만화적으로 표현되었던 손발이 좀 더 디테일해진다거나, 표정이 징그러울 정도로 좀 더 잘 보이는 디테일 등이 즐거웠습니다. 사건 자체는 그렇게까지 자연스럽다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크게 거슬리진 않았습니다.

후속작이 나왔고 평가가 좋은 것 같아서 전작부터 사서 해 봤는데, 괜찮은 것 같습니다. 이어서 후속작을 해 볼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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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포면옥의 물냉면, 만두, 녹두전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가게정보

상호: 새만포면옥
인허가번호: 19930063498
주소: 서울특별시 은평구 연서로 171(갈현동, 지상1,2층)
방문한 날짜: 2025년 6월
먹은 메뉴: 물냉면, 찐만두, 눈꽃만두, 녹두전

면기에 차려진 맑은 국물 냉면. 고명으로 달걀, 배, 고기, 오이, 절인 무가 올라와 있다. 찐만두와 생도넛처럼 부풀어오른 녹두전.

생각

만포면옥은 은평구에 자리잡은 평양냉면 가게입니다. 자주 방문하는 집인데, 혼자 방문하지 않아서 메뉴를 이것저것 시켜본 기념으로 포스팅하게 되었습니다.

만포면옥의 물냉면은, 요즘 제 입맛이 이 집을 기준으로 형성되어 그럴지 모르겠는데, 튀는 데 없이 무난히 맛있는 냉면입니다. 편하게 갈 수 있는 위치에 이런 가게가 있는 게 정말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게에서 빚는 만두를 내는데, 평양냉면에 맞는 심심하면서 감칠맛에 힘을 싣는 소 구성이 마음에 듭니다. 찐 만두와 튀긴 만두 두 가지 버전이 있는데(튀긴 버전은 사진이 없습니다) 둘 다 좋습니다.

녹두전은 두꺼운데, 향이 좋고 숙주와 고기가 좋습니다. 저는 평양냉면에 만두를 곁들이기보다 녹두전을 곁들이는 걸 더 좋아하는 편인데, 녹두전의 기름짐을 냉면 국물로 씻는 것이 절묘하게 맛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만두, 녹두전 페이스트, 육수 등을 포장해 팔아서 집에서 간단하게 맛을 재현해 먹을 수도 있는데, 기회가 된다면 한 번쯤 집에서 먹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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샌드위치 정신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샌드위치라는 음식의 유래 중에, 샌드위치라는 성을 가진 유럽 귀족이 놀면서 쉬지 않고 한 손으로 먹기 좋은 음식이 필요해서 개발되었다는 이야기가 있지요.

그게 진짜 유래인지 붙은 이야기인지는 모르겠고 관심도 없지만, 제게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샌드위치와 햄버거는 한 손으로 편하게 들고 먹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런 샌드위치류 음식을 샌드위치 정신을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수제 버거가 맛있는 음식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걸 한 손은 커녕 양 손으로 쥐고 베어 먹을 수 없고, 접시에 놓은 채 분리해서 먹어야 하면 그게 버거겠습니까? "빵과 양상추를 곁들인 데미그라스 소스 없는 함박스테이크"라고 부르는 게 더 고급화 전략에 합치하지 않겠습니까? 또, 저는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프랜차이즈 버거를 싫어하지 않지만, 한 입 먹을 때마다 재료들의 정렬이 밀려지고 빵은 다 먹었는데 소스에 젖은 야채만 포장지 속에 남는 걸 보는 건 지긋지긋합니다. 닭고기 부위 형태가 남아 있는 패티? 그건 그냥 치킨으로 먹으면 안 될까요?

저는 변주를 좋아하고, 변주가 원본보다 잘 나가는 것도 즐거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게 과하면 원본이 추구했고 잘 나가던 이유를 잊기 쉽지요. 나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가끔은 떠올려 줬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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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
저자: 리 매킨타이어(정준희 해제)
역자: 김재경
출판사: 두리반
출간일: 2024년 11월 8일
원서명: On Disinformation: How to Fight for Truth and Protect Democracy
원서 출간일: 2023년

생각

『누가 진실을 전복하려 하는가』는 대안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분석으로 유명한 리 매킨타이어의 2023년 저술입니다. 전작은 제가 사람들에게 영업하고 다니는『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이지요. 빌린 책을 다 읽는 것이 우선이긴 하지만, 데이트를 겸하여 독립서점에 갔는데 아무 것도 안 사고 나오긴 무엇해서 얇은 책을 찾던 도중 그래도 아는 이름이 나와서 읽게 되었습니다.

이번 책은 제가 읽지 않은 작가의 전작 『포스트트루스』와 좀 더 맥락적으로 이어지는 모양입니다. 현대 미디어 시대에 어떤 사람들이 의도적으로 거짓으로 진실을 덮어씌우려는 현상의 간략한 역사와, 오늘날의 폐해, 그리고 거기에 사회가, 그리고 개인이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에 대한 제언이 간결하게 다루어진 책입니다. 참고자료를 포함해서 200페이지를 살짝 넘는 책이니, 오늘날 우리 사회가 탈진실로 인해 겪는 여러 문제에 대한 지침서로 가볍게 읽어보기 좋은 책입니다.

이 책의 특징이라고 하면 40페이지에 달하는 해제인데요. 저는 기본적으로 책의 저자가 아닌 사람이 책에 싣은 글이 책의 내용을 비판하는 것이 불편한 사람입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벼랑 끝에 선 민주주의』(낸시 매클린, 세종서적)의 추천사를 보고 분개했던 기억을 들 수 있겠고, 고전이라 역사적으로 비판된 적이 있는 내용을 싣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한 해설서나 이론서의 해제마저도 이게 맞나? 같은 생각을 하면서 읽곤 했습니다.

이 책의 해제를 쓴 분도 저자 리 매킨타이어의 진술이 명료하지 않은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책의 범주를 꽤 넘어서는 느낌이 있어서 이럴 거면 본인의 저술을 한 권 내는 편이 낫지 않나? 같은 생각이 들기도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미국의 상황을 위주로 서술하는 본서와 저자의 경향을 한국의 상황에 맞게 재해석하고 차이를 보여주는 내용은 이 번역서를 원문에 충실하게 옮긴 책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책에 한 걸음 다가서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뭐, 해제라는 게 제가 상정했던 거랑 좀 다르다고 배우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습니다.

제 소감은 다음과 같습니다. 해제에 따르면(그리고 해제를 쓴 분에 따르면 저자의 일반론으로도) 탈진실의 핵심 및 부수적 특성은 자신의 신념과 합치하지 않는 진실을 거부하고, 또 신념에 합치하는 (비현실적) 현실을 새로 창안할 수 있고 그것을 행동으로 이어나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오늘날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내용을 읽으면 정말 끔찍하고 당장이라도 배제해야 하는 행위 같지만, 저는 이 요소만으로 탈진실을 정의하거나 저러한 특성을 비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요한 이유는 이러한 특성은 인류의 지적 활동에 불가피한 요소라는 것이 제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해제에서도 과학 부정이 역사 부정보다 더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고 하였듯, 어떤 요소들은 비교적 진실을 투명하게 규명할 수 있지만 어떤 요소들은 그럴 수 없지요. 극단적으로는 대통령이 거부권을 얼마만큼 행사하는 것이 정당한지, 경선을 마치고 대선 후보가 될 사람에게 이례적으로 빠르게 유죄 취지의 파기환송을 하는 것이 정치개입인지 아닌지, TV 대선 토론회에서 성기에 젓가락을 꽂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것이 적절한지, 이런 것들은 결국 어떠한 식으로든 인간에 의해서 결정되어야 하는 일입니다. 관점에 따라서 이런 것들은 '과학적 진리' 혹은 '명백히 확립된 사실'(p.169)이 아니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다툼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당대의 일반 현실'(p.176)을 결정하는 과정임에는 틀림 없습니다.

덜 주요한 이유는 우리는 이미 그렇게 구성된 현실들의 파편 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죽으면 생명 활동이 끝난다는 믿음과 어떤 구원자를 믿는 자는 죽어서 천국에 가리라는 믿음, 생명체는 죽어서 환생하는 고리에 빠져 있지만 깨달음을 얻은 자는 그 고리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는 믿음이 진실의 입장에서 공존할 방법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입장들이 서로 부딪히지 않도록 때로 얼버무리고 때로 조율하며 공존하고 있지요. 이런 예는 이런 것보다는 훨씬 덜 거창하게, 우리의 삶에서 훨씬 다양하게 퍼져 있을 것입니다.

탈진실과 역정보에 대해서 우리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는 본서와 해제의 의견에 대체로 동의하고, 해제를 쓴 정준희 교수의 의견이 좀 더 구체적이라고 느끼는 편입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과 거버넌스의 필요성, 그리고 이 대안조차 난해하고 흐릿하다는 인식까지도 말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관하고(해제), 할 수 있는 일을 위해 밖으로 나가 할 일을 찾자(본서)는 결론은 둘 다 해야 하고, 희망적이고, 막막한 일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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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극상과 출세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일본의 소설 투고 웹 사이트 『소설가가 되자』에 투고되고 히트한 『책벌레의 하극상』의 일본어 제목은 『本好きの下克上』입니다. 직역하자면 '책을 좋아하는 사람의 하극상'일까요. 하극상은 직역을 했다기보다도, 한자를 그냥 적힌 대로 읽은 것입니다.

하극상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느낌은 부하가 상사에게 '대드는 것'일까요. 좀 더 나가면 부하가 상사의 뒤통수를 치고 상사에게 불이익이 되는 행동을 하는 것을 가리키는 느낌 정도? 『책벌레의 하극상』을 읽어보면, 책 제목이 될 정도로 그게 이야기의 핵심이거나 초반 훅이냐 하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인공의 신분을 가리키는 각 부의 제목을 보면 제목의 함의가 드러나는데, 1부부터 각각 「병사의 딸」, 「신전의 견습무녀」, 「영주의 양녀」, 「귀족원의 자칭 도서위원」, 「여신의 화신」입니다. 신분 상승이 명백하게 보이죠.

goo사전은 下剋上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있는 자가 위에 있는 자에게 이겨서 권력을 손에 넣는 것. 남북조시대부터 전국시대에 이르는 동안 농민이 영주에 반항하고 봉기하여 잇키를 일으키거나, 가신이 주가 되는 이에(家)를 멸하고 슈고다이묘나 전국 다이묘가 되거나 하던 난세의 사회 풍조를 일컫는다.

일본어 下剋上이 무엇인지 찾다 보니 알게 된 것은 이 단어가 생각보다 역사적 맥락이 확실히 있는 단어라는 것이었습니다. 일본어 위키백과를 보면 「하극상 일람」이라는 꼭지마저 있습니다. 한자만 놓고 보면 '아래가 위를 이기다' 뿐이지만, 일본에서는 (지배계층의) 권력 구조 변화가 일어나는, 특히 신분이 낮던 사람이 윗 신분으로 올라가는 특정한 서사를 지칭하는 단어인 셈입니다.

그러면 이제 저는 下剋上을 하극상으로 옮기는 것은 최적의 번역이 아닐 수 있다는 의심 아래에, 어떤 단어가 적합할지 찾게 됩니다. 역사적인 맥락을 고려하면 모반, 반란 같은 생각을 하게 되는데, 왠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이러는 이유는 제가 번역하려는 게 일반 단어인 下剋上이 아니라 작품의 제목인 『本好きの下克上』이기 때문이겠죠. 아무래도 작품에 맞게 신분 상승이라는 함의를 담는 단어를 고르고 싶고, 반란이라는 단어가 갖는 유혈 느낌은 '유쾌한 반란' 정도로 억누르고 싶습니다. 사실상 내용면에서 『盾の勇者の成り上がり』의 成り上がり와 크게 다르지도 않은 것 같고요.

그래서 떠오른 단어가 한국어에서 '신분 상승'을 좀 덜 노골적으로 가리키는 단어인 출세였습니다. 출세라… 뭔가 아닌 기분은 드네요. 참고로 일본 사회에서는, 出世라는 단어에도 역사적 맥락이 붙어 있습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에서 최고로 출세한 사람'이라고 불린다거나, 전국시대의 막을 내린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세력을 기른 하마마쓰를 출세의 도시라고 마케팅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원래 불교 용어로 출가와 비슷하게 쓰인 출세가 지금 의미가 된 것도 일본에서 출가를 통해 권력을 얻던 과정과 연관이 있다고 하지요.

하극상과 출세라는 단어는 어쨌든 한국어에서 쓰이는 단어입니다. 한자 단어이고, 원전을 타고 올라가 보면 중국 문헌에 있거나(하극상: 수나라 시절 『오행대의』) 불교를 통해 전래된(출세: 산스크리트 lokottara) 단어인데, 일본에서 어떠한 맥락을 가지고 쓰인 단어이고, 현대 일본어에서는 그런 맥락이 희미해진 채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향을 받았을 한국어에서도 나름의 변화를 겪었습니다. 下剋上을 하극상이라고 옮기는 데에서 생기는 오차는 그런 것이겠지요.

그래서 『本好きの下克上』을 어떻게 옮기면 좋을 것인가? 분하게도 제가 『책벌레의 하극상』보다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번역을 제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굳이 하극상 말고 다른 단어를 꼽자고 하면 『盾の勇者の成り上がり』가 했던 것처럼 '성공담' 같은 단어를 꼽겠지만, 재미가 없습니다. 조사를 하면서 느낀 것이지만, 下克上이라는 단어의 선택은 일본어 맥락에서도 작품의 내용보다 과격한 것이 맞다고 봅니다. 거기서 오는 효과를 한국어에 좀 더 맞게 옮긴다고 그 느낌을 없애버리는 건 좋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신분 상승의 뉘앙스에서 항명하는 뉘앙스로 조금 과격함의 종류가 달라지는 느낌은 있지만, 주인공 마인이 작중에서 '윗사람'을 대하는 태도의 다른 측면을 잘 보여주는 느낌이 들어 오히려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아리까리하네요. 번역은 불가능한 일이고 반역일 수는 있겠지만, 최소한 유쾌한 반역일 수는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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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alking Dead: Season 1 Episode 1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The Walking Dead: The Telltale Definitive Series
개발사: Telltale Games(Skybound Games)
배급사: Skybound Games
출시일: 2012년 4월 24일(2020년 10월 30일)
장르: 어드벤처

생각

유명한 게임을 그래도 조금 하는 척은 해야지, 하고 크게 세일할 때 산 게임을 조금씩 플레이하는 김에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게임플레이 집중력을 생각해보면 이 올인원 팩은 차치하고 시즌 1마저도 제가 끝까지 할 가능성은 별로 없어 보이는데… 그래도 이렇게 블로그에 끊어서 올리기 좋게 에피소드제가 되어 있으니 미드를 한 편 봤다 치고 감상을 남기도록 하겠습니다. 뭘, 장편 만화책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포스팅 방식이니까요.

텔테일 어드벤처 게임으로는 『The Wolf Among Us』를 조금 해 봤습니다. 시간상 큰 차이는 없겠지만 워킹 데드 쪽이 먼저군요. 이 게임의 구성은 원작 IP 때문인지 시즌과 에피소드 구성을 따르고 있고, 각본도 꽤나 영상매체식인 것 같습니다. 클라이막스 이후의 닫는 연출이 특히 그런 느낌을 받게 만드네요.

저는 어릴 때부터 이야기가 있는 게임에 매료되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가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계속 생각했었는데 그러려면 어떤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게임 만드는 연습이야 계속 해왔는데……. 어쨌든 이야기를 쓴다고 해도 여러 가지 이야기 템플릿을 가져올 수 있는데, 제가 뭐 드라마를 보는 것도 아니니까 드라마같은 라이팅의 얼개를 잡을 수는 없겠지요. 그럼 어떤 것을 견본 삼아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워킹 데드의 이야기에 대해 말하자면, 이미 진부한 말이겠지만 이 이야기가 현실의 알레고리가 되는 지점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어느 날 갑자기 우리는 재앙 속에 살게 되었습니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우리와는 다르고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지능도 없는 것 같지만 끈질긴 생명력과 많은 수로 우리를 압도하는 그들. 우리를 지켜주리라 기대했던 질서는 기능하지 않고 어떻게 모인 우리들이 자력으로 살아남아야 하는 세상. 그런데 웬걸. 우리는 서로 생각이 다르고 지켜야 하는 것이 다르고 우선순위가 다릅니다. 그들에 맞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데는 동의할 수 있어도, 그 과정에서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그것을 두고 '우리'는 갈등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게임은 그것을 묘사하는 게임입니다. 드라마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은 그 결정을 플레이어가 하게 만들지요. 유쾌할 수는 없는 경험입니다. 저도, 게이머도, 민주주의의 주권자도, 그런 결정을 하고 싶지 않아합니다. 대신 누가 선택하고 욕을 먹어줬으면 하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을 하기로 선택하는 것이 게임의 플레이어 되기이자 주권자 되기겠지요. 그 점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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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erican Truck Simulator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American Truck Simulator
개발사: SCS Software
배급사: SCS Software
출시일: 2016년 2월 2일
장르: 운전 시뮬레이션

생각

언제 샀는지 기억도 잘 안 나지만 사고 잊어버린 채 있던 『American Truck Simulator』를 꺼내서 플레이했습니다. 『Euro Truck Simulator 2』는 해 봤는데 무엇이 다를까? 같은 생각을 하며 플레이해보게 되었습니다.

트럭 조작을 다 잊어버렸을 거라 생각하고 Driving Academy를 켜서 몇 시간 해 봤는데, 당장 이것도 어렵네요. 컨트롤러로 플레이하는데 핸들이 돌아가는 속도가 너무 느리게 느껴지기도 하고… 모드에 처음 진입할 때 "이걸 실제 운전 연습 용도로 쓸 수 없습니다"라는 경고가 뜨기는 하지만, 어떤 조건 하에서는 가능할 것도 같네요.

게임 본편 커리어 모드는 유로트럭이 그랬듯 자기 트럭 없이 고용된 운전수로 뛰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트럭에 앉을 때마다 새 트럭이니까 백미러를 조정하는 것부터 시작하는 감각이 재미있지요. 샌프란시스코는 그래도 한 번 가 봤으니까, 거기서 봤던 풍경을 재현한 길을 가는 것도 즐거운 일입니다.

저는 운전을 못 합니다. 운전면허를 따러 갔다가, 도로주행을 앞둔 시점에 손과 발과 눈을 동시에 움직여야 하는 작업에 압도되어서 더 진행하지 않았습니다. 유로트럭을 할 때마다 항상 드는 생각은… 2종자동도 이런 식으로 연습해볼 수 있는 게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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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6월 4일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이 블로그는 2024년 12월 4일 첫 포스팅을 올렸고, 그로부터 6개월이 흘렀습니다. 보셨으면 아시겠지만, 매일 하나의 글을 올리기로 했고, 놀랍게도 지금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고 있습니다. (블로그 부분만 보면 중간중간 비는 날짜가 있는데, 그런 날을 위키 쪽에 포스팅을 올린 날입니다.)

저는 아무래도 꾸준하게 뭘 하는 걸 잘 못 하는 편입니다. 이 블로그를 이렇게 쓰기로 한 것도 그걸 보완해 보려는 시도를 한 거지요. 그래도 블로그 포스팅은 미리 써서 세이브 원고를 만들어둘 수 있으니, 정말 하루하루 빼먹지 않고 써야 하는 것보다는 쉬웠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목표는, 글쎄요. 일주일 치 세이브 원고 유지하기 같은 걸 해 봐야 하나….

이 포스팅이 게재될 때 쯤이면 2025년 6월 3일에 있는 중요한 사건의 결과가 확정되어 있겠지요. 공교롭게도 2024년 12월 3일로부터 6개월이 지난 시점이군요. 이 결과가 제가 바라는 방향으로 나든 그렇지 않은 방향으로 나든, 중요한 건 제가 사회를 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이라도 밀어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 무언가를 계속 쓰는 일이 제가 하려는 일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되기를 소박하게나마 바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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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kyo Game Show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시각정보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TOKYO GAME SHOW'라고 적힌 티셔츠.

검은 티셔츠의 가슴 부분에 흰 글씨로 'TOKYO GAME SHOW'라고 쓰여 있다. 뒷면은 비어있다.

해설

도쿄 게임 쇼의 홍보용 티셔츠.

생각

PlayX4 행사에 가서 TGS 부스의 홍보 이벤트에 참여하고 받은 티셔츠입니다. 일본 게임 관련 행사는 BitSummit을 가 보기는 했는데 그 때 티셔츠는 가격 대비 만족스러워보이지 않아 구입하지 않았습니다. TGS는 가 본 적이 없는데 무료로 받는 티셔츠는 좋지요. 사이즈는 좀 더 컸으면 좋겠지만, 뭐 어쩔 수 없지요. 도쿄 게임 쇼도 가 볼까? 싶지만, 일본의 대규모 행사는 인파를 생각해 봤을 때 별로 가고 싶지 않은 느낌이 있습니다…. 대규모 게임 행사를 좋아하는 편도 아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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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
저자: 이경혁
출판사: 로고폴리스
출간일: 2016년 8월 2일

생각

『게임,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창』은 『호모 루덴스』 다음으로 읽는 빌린책챌린지 책입니다. 보시다시피 저는 게임에 대해서 뭔가 쓰는 걸 좋아하는 편이고, 게임 비평도 게임에 대해서 뭔가 쓰는 작업이니까, 제가 글을 쓰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며 읽게 되었습니다.

이 책은 저자가 2015~2016년간 연재한 글을 다듬어 엮은 것입니다. 어떻게 말하자면 10년이 다 되어가는 책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요. 그 때에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나 10년을 거쳐 가며 체득한 것들을 다시 확인하기도 하고, 이 책을 읽고 새로 알게 된 것도 있어서 골고루 얽혀서 재미있는 경험이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게임의 자유도를 '다양성'과 '상상의 질료성'으로 나눈 분석은 제게 꽤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게임의 자유도란 무엇인가?"는 게임을 만드는 입장에서 진입로가 잘못된 질문처럼 여겨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거기에 대해서 굳이 그런 질문을 하지 않고 게임을 만들어 왔지요. 적어도 자유도라는 단어를 구현된 선택지와 반응의 다양성과 구현된 내용을 보고 플레이어가 다양하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상태의 두 가지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다면, 어떤 식으로 경험을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좋은 어휘가 될 것 같습니다.

반면 "확률형 아이템을 기획하는 사람의 업무는 게임 기획이 아니라 마케팅 기획"(pp. 317-318), "게임의 영역은 게임에서 풀고 마케팅의 영역은 마케팅에서 풀어야"(p. 318) 같은 이야기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BM 기획이 게임 기획과 분리된 것처럼 여겨지는 시절이 있긴 했지만 지금 많은 서비스형 게임은 게임 경험과 BM이 융합되고 있습니다. 패키지를 파는 게임이라고 상태가 딱히 낫지는 않지요. 대부분의 기업에서 만들어지는 게임들은 제품을 만드는 고민과 제품을 파는 것에 대한 고민을 분리할 수 있지도 않아 보입니다. 재무적인 성공, 최소한 생존이 그들의 우선순위에서 앞쪽에 있는 한 말이지요.

항상 그렇지만, 저는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저자에게 "이 책을 써서 그 시점에 고정된 생각을 공개한 이후 관찰한 것을 통해, 덧붙이고 싶은 바가 있는가?"를 궁금해하게 됩니다. 어느 새인가 시들해진 게임 중독 담론. 이 책을 썼을 때보다는 좀 더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진 것 같은 이스포츠. 저자의 분석에 무게를 실어줄 수 있거나 반례가 될 수 있는 새로운 게임들의 출시.

이런 이야기를 생각해볼 수 있는 책을 읽게 되는 건 즐거운 일입니다. 좀 더 공부를 많이 해야 저도 좀 더 길고 구조가 있는 글에 도전해볼 텐데, 제게는 아직 먼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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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K Digital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LOK Digital
개발사: Letibus Design, Icedrop Games
배급사: Draknek and Friends
출시일: 2024년 12월 12일
장르: 퍼즐

생각

『LOK Digital』만 사면 Dreknek & Friends Puzzle Bundle을 컴플리트하더라고요. 이미 비슷한 게임들을 즐겁게 했으니 즐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사게 되었습니다.

이 게임은 주어진 알파벳이 나열된 판에서 가상의 단어를 조합할 때마다 태어나는 생명체의 각자 다른 기능을 활용해서 흰 색으로 시작한 한 판을 모두 검은색으로 바꾸는 퍼즐 게임입니다. 각 타일이 자원으로도, 다른 타일을 이용해서 지워야 하는 장애물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에 생각보다 가능한 상태 수가 많고, 꽤 푸는 맛이 있는 퍼즐이 됩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놀란 점은 게임이 적절하게 misdirection을 배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가능한 단어가 LOK, TLAK, TA라고 하면 O가 단어로 쓰일 가능성은 LOK밖에 없겠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O가 하나 있는 것이 LOK가 하나 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O가 다른 단어의 기능으로 사라질 수도 있기 때문이죠. TLAK라고 생각하고 풀었더니 L과 K가 다른 조합으로 사용되고 TA가 사용될 수도 있고요. 이런 디자인이 쉽지는 않았을텐데 어떻게 했을까요?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단어들이 BAC, DEF 같은 식으로 무의미해지거나 대부분의 퍼즐이 복수 정답이 있거나… 했을 것 같은데, 한 칸의 오차도 생기는 걸 허용하지 않는 종류의 퍼즐을 이런 규칙 세트에서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는 기회가 된다면 좀 배우고 싶습니다.

게임의 이야기는 지렁이같은 생명체가 제가 플레이함에 따라 점점 문명을 쌓아가는 내용인데, 이 이야기와 분위기 자체도 꽤 즐겁습니다. 한 판 한 판 꽤 고민을 해야 하지만 그렇게까지 오래 걸리지는 않아서, 적당히 즐길 만한 게임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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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メランコリア
저자: 도만세만(道満晴明)
출판사: 슈에이샤
출간일: 2018년 3월 19일(1권), 2019년 3월 19일(2권)

생각

『멜랑콜리아』는 도만 세만의 단행본 2권 구성의 만화입니다. 목차를 보면 A부터 Z까지 단어를 하나씩 고른 제목들이 눈에 들어오고, 첫 몇 권을 읽으면 단편집이라고 생각하고 만화를 읽게 됩니다. 그러다 은근슬쩍 다른 화에 나왔던 요소들을 언급하더니, 점점 이야기가 하나로 이어지며…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는 직접 확인하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도만세만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도 구성 면의 완성도가 높다고 생각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이 책이 국내에 출간되었는지를 찾기 위해 검색하다가, 동명의 영화가 2011년에 공개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멜랑콜리아라는 이름의 천체가 지구에 떨어져 멸망할 것이 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다룬 영화더군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이 작품은 제목과 주요한 전개, 제가 이 글에 언급하지 않은(직접 읽고 느껴주었으면 해서) 요소까지… 영화 『멜랑콜리아』의 틀을 가지고 저자의 스타일을 살려 그린 만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를 거의 보지 않는데, 한 번 볼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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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루덴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호모 루덴스
저자: 요한 하위징아(Johan Huizinga)
역자: 이종인
출판사: 연암서가
출간일: 2010년 3월 10일
원서명: Homo Ludens(네덜란드어)
원서 출간일: 1938년

생각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에 이어 읽게 된 은평구립도서관에서 빌린 책입니다. 게임업계에서 이론같은 것을 책에서 찾는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책인데 정작 읽어보지는 않아서 읽게 되었습니다. 읽어보니 굳이 업계인이 읽을 필요는 없는 책 같긴 합니다. 게임 개발에 대한 인사이트가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며, 저자가 'e-스포츠'에 대해 보이는 태도는,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구시대적입니다.

이 책은 호모 루덴스라는 학명스러운 명명을 제시하며, 인류라는 종에게서 발견되는 놀이하는 종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합니다. 인간의 여러 활동들에서 보이지만 지금까지 무시되었던 "놀이" 요소를 역사와 언어를 통해서 추적하며 근거를 제시합니다. 요즘이라면 안 쓸 법한 다른 문화에 대한 '문명인'스러운 서술이라거나 너무 자명하다고 말하며 근거를 제대로 붙이지 않은 서술 등이 거슬리지만, 법률, 전쟁(!), 지식, 시, 신화, 철학과 예술까지 인간 활동의 많은 분야에 대해 놀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이 출간된 1938년의 유럽은 이미 한 번의 세계대전을 겪고 나치가 집권한 상황입니다. 1차세계대전이라는 총력전을 한 번 경험했지요. 이런 상황에서 저자는 지난 역사 속 전쟁이 지닌 놀이적인 요소를 지적합니다. 총력전은 이 책이 다루는, 목숨과 패권이 걸려있음에도 규칙과 상대에 대한 존중이 있었던 아곤적 전쟁과는 차이가 있겠지요. 다른 한편으로 저자는 유럽의 역사를 놀이 측면으로 보고 현대까지의 흐름을 분석하며 공리주의와 막시즘의 물질 숭배, 유물론적 성격과, 나치즘의 '거짓 놀이'적인 성격을 비판합니다. 시대라는 맥락을 놓고 보았을 때 이 책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입니다. 오늘날(1938년)의 인류는 놀이 정신을 잃어가고 있으며 그것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 책이 나온 뒤 인류에게 일어난 일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의의 있는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전 저술인 『중세의 가을』도 중세의 문화에 있던 그러한 놀이 정신을 다루고 있는 것 같아 관심이 갑니다.

그의 저작이 그의 시대에 유의한 저작이었듯, 저는 이 분석을 오늘날에 적용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자는 의례에 앞서 놀이가 있었다고 주장합니다.(p.59) 법률 소송이 경기와 유사하다고도 합니다.(pp.157-158) 이런 것들을 제가 보았을 때는, 인류가 자연 법칙이 지배하지 않는, 스스로 만든 규칙에 스스로를 집어넣는 법을 발명한 사건이 인류에게 있어 아주 중요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인간들 사이의 태초의 규칙이 어떻게 발생했을지는 모르겠지만, 제 관심은 아닙니다. 저한테 중요한 것은, 인류가 어떤 종류의 무리생활을 하기 시작한 시점과 원시적으로 사회라고 부를 만한 것을 이루는 어느 시점 사이에서, 인간들이 그 중 누군가가 만든 '규칙'에 동의하는 지점에 진입했다는 점입니다.

그 '최초의 규칙'이 정해지는 과정은 어떠한 무규칙 상태에서 따라야 하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다는 문제 상태였을 것입니다. 그 규칙은 어떻게 정해졌을까요? 그 규칙은 좀 더 재미없게 자원의 분배에 의해 강제되었을 수도 있겠지만, 이 책이 놀이라고 지칭하는 것에 의해 구성되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구성원들이 '합리적' 이유 없이 자발적으로 규칙을 따르게 만드는 요인… 즉 '재미' 말이지요. 놀이가 인류가 가질 수 있었던 최초의 자의적인 규칙이었고, 이것의 유용함으로부터 인간은 따라야 하는 어떠한 규칙들을 일궈나갈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놀이로부터 규칙이 발전하는 과정이 굳이 누군가의 의도일 필요는 없고, 생물의 진화와 같이 우연한 돌연변이로부터 적응압을 거쳐 집단 내의 소송이 되고, 집단 밖의 외교가 되고, 그런 규칙들로 변화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놀이'의 요소는 옅어지고 잊히기도 하였지만요.

오늘날을 분석하는 데 이 책을 활용하고 싶다고 하면서 왜 이런 이야기가 되었는지 궁금해하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거기에 대한 제 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사회가 '어떤 규칙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해서 합의를 보고 있지 못한 사회이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분에 상관없이 법은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에 따라 행동하고, 어떤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은 법 적용과 집행에 있어서 좀 편의를 봐줘도 된다'고 믿고 행동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법이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자세히 규정하지 않은 것을 그 의도에 어긋나지만 금지되지는 않은 식으로 악용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것이 자신에게 유리하다면 그것이 사실이 아니더라도 믿고 전파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습니다.

우리 사회가 서로 다양한 의견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다양한 의견을 갖는 사람들이 하나하나의 이슈와 행동에서 자신이 반대하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거기에 승복할 수 없는 상태. 어떠한 권위과 규칙에 따르기로 합의하지 않는 상태는 작자 시대의 말로 하자면 아무도 따르지 않는 국제법과 같은 상태, 우리 시대의 말로 하자면 내전 상태라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 그러한, 구성원이 스스로를 참여시킬 수 있는 공동의 규칙을 재건해야 하는 상태인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을 고대 인간의 놀이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하면 조금 순진한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삶에 내재하는 민주적인 요소에 눈을 주게 됩니다. 결국은 주권을 갖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민주주의를 지지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아득한 일이지요. 그런 역사를 다룬 책으로서 『호모 루덴스』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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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고 틀림이 어떻게 결정되는가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어떤 임의의 명제가 참이나 사실로 평가되거나, 거짓이나 헛소리로 평가되는 것은 결국 거기에 의견을 낸 사람들의 결정에 달려 있으며, 그런 사람들 이외에 참과 거짓을 결정해서 우리에게 답을 줄 수 있는 것―예를 들자면 신이나 진리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일 이것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것은 법과 경찰력의 집행이겠지요. 사법은 의도적으로 어떤 명제를 판단하고 법을 적용하는 일을 특정한 사람들이 수행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경찰력의 집행 또한 이론상으로는 그러지 않아야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현장의 판단에 의한 "재량"이 법의 의도와 꽤 다르게 가는 걸 많이들 보았겠지요. 물론 이것은 그런 행동이 절대 옳다는 의도는 아닙니다. 그런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법자와 집행자들은 따라야 할 엄격할 규칙들이 있고, 그 규칙에 어긋난 행동을 지적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일입니다. 최소한 이상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시간에 따라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최선의 지식이 변화하는 분야로는 의학을 들 수 있겠지요. 정신질환 진단 기준이 변화하는 것. 비의료인을 위한 심폐소생술 교육이 변화하는 것. 무엇을 하고 무엇을 먹고 어떻게 운동하는 것이 건강에 좋은지. 사람의 몸은 그다지 바뀌지 않았을 수 있지만, 무엇을 하는 것이 최선인지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바뀝니다. 그리고 그런 지침들을 바꾸는 것은 사람입니다.

그래도 절대적인 참과 거짓이 있을 것 같은 수학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수학철학이나 증명불가능함 같은 걸 고려하지 않아도 되는… 어떤 증명이 옳으냐 그르냐 같은 단순한 문제도 결국은 어떤 사람이 증명을 제시하고, 그 증명에 오류가 있음을 다른 사람이 지적하고 그 지적이 옳은지를 추인하거나, 그런 지적이 발생하지 않는 과정을 통해서 참임이 받아들여지게 되겠죠. 수학은 단지 그 과정을 훈련된 다른 사람들이 비교적 검증하거나 반증하기 쉽다는 것 이외에 차이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은 다수 수학자들이 검증되었다고 증언하기 전에 어떤 증명이 참인지 알 방법은 없습니다.

자연이라는 채점 수단이 있는, 자연과학같은 건 어떨까요? 아무리 틀린 법칙을 주장하고 사람들이 다 그게 옳다고 해도,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동작해주지 않으면 틀렸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자연이 실제로 그렇게 동작하지 않으면 틀렸다'라는 것도 사람이 정한 규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측정 한계와 오차 수용은 어떤 규칙 체계가 맞고 틀리다를 알아내는 영역보다는, 현실과 차이가 있는 모델로서 규칙 체계를 받아들이기를 권장합니다. 뉴턴 역학이 낮은 속도에서 특수 상대성 이론의 좋은 근사가 되는 것처럼 말이지요.

결국 인류가 세상에 가지고 있는 모든 판단은 거기에 의견을 내는 사람이 정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단지 그 결정과정은 아무 맥락 없이 다수결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비슷한 문제를 고민하던 사람들이 세운 규칙에 따라 진행하자는 합의가 있는 것이지요. 사법은 재판관들이 하나의 독립된 사법 기관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법과 판례를 존중하며 스스로 판단하도록 훈련시키고, 수학은 형식과 논리를 엄수하면 틀릴 수 없(다고 여겨지)는 어떠한 작은 체계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형식과 논리를 전개하고 빈틈을 발견할 수 있어 모든 수학자가 같은 결론을 낼 수 있도록 훈련합니다. 대부분의 분야는 이렇게 극단적이지는 않지요. 좀 더 "사실"을 다툴 법한 여지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이 주장은 자칫 허무하게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진리와 옳음은 객관적으로 실증할 수 없고 시간에 따라 바뀔 수 있으며, 진실이란 그저 그 당시의 사람들에게 제일 이익이 되는 이야기가 선택받을 뿐이다." 하지만 제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오히려 그것이 이익이 되기 때문에 진실을 뒤집으려 하는 사람들에게 대항하기 위해서 무엇이 진실이 되는지에 대한 이 메커니즘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성공하는 사람들이 규칙을 어기는 이유는 그것이 결국 잘못이라고 충분히 지적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법의 집행이나 언론의 태도가 어떤 부류의 사람들과 어떤 부류의 사람들에게 명백하게 차이가 난다고 하면, 그것은 그러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가 충분히 반영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고치기 위해 에너지를 낼 수 있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문제 의식이 있는 사람일 수밖에 없습니다.

곡학아세라는 말이 정치권에서 꽤 오래 전에 유행했습니다. 언론사의 이름을 달고 가짜뉴스를 하겠다는 사례도 발견되고 있습니다. 반지성주의가 팽배했다고 느껴지기도 하지요. 에코체임버라는 말도 꽤 널리 쓰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스스로의 이득을 위해서 사실을 왜곡하는 행위가 절멸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것을 사회 중심부에서 몰아내려는 노력은 해야겠습니다. 우리 스스로와 우리 다음에 올 세대에게 요구할 덕성을 꼽는다면, 저는 자신의 이해 관계와 무관하게 세상을 인식할 수 있는 자세를 꼽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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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계인 침공시 책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시각정보

검은 티셔츠에 흰 글씨로 "외계인 침공시 책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 먹힌다"라고 적히고 하늘색 외계인 그림이 있는 티셔츠입니다. '책 안 읽는 사람이' 부분도 하늘색으로 강조되어 있습니다.

"외계인 침공시 책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힌다"라는 문장과 하늘색 외계인 모양의 도안이 가슴 부분에 있는 검은 티셔츠. 뒷면은 비어 있다.

해설

'외계인 침공시 ~한 사람이 먼저 잡아 먹힌다' 밈에 독서를 집어넣은 것으로 보이는 티셔츠. 마플샵에서 파는 듯하다.

생각

선물받은 티셔츠입니다. 이번에 선물받은 두 티셔츠 중에서는 이게 좀 더 마음에 듭니다. 일단 흰색이 아니고, 메세지가 더 잘 전달되는 도안의 티셔츠인 점이 그렇습니다. 제가 문장형 티셔츠, 읽으면 무슨 내용인지 바로 알겠는 티셔츠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데, 뭐 책 읽자는 건 좋아하는 내용이니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아쉬운 점도 없지 않은데, 하나는 제작자 표시가 너무 눈에 띄어서 광고판이 된 느낌이 드는 점입니다.(지난 티셔츠의 제작자 표시는 만화 특성상 크게 띄지 않아서 더 나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하나는, 제작자의 프로필을 보았을 때 이 티셔츠의 원래 메세지는 "외계인 침공시 안 읽는 사람이 먼저 잡아먹혜다"였을 거라는 점이겠네요. 저는 책은 평균보다 많이 읽지만 문학, 특히 운문은 그다지 친하지 않아서… 제가 이 시리즈에 담겨있을 메세지에 공감하기 어려운 점이 부분적으로 있습니다. 저만 모른 척 하고 입으면 될 일이긴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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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k Deity 2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Dark Deity 2
개발사: Sword & Axe LLC
배급사: indie.io, SmileGate
출시일: 2025년 3월 24일
장르: SRPG

생각

『Dark Deity 2』는 SRPG입니다. 괜찮아 보여서 구매하게 되었고, 구매한 뒤 안 하고 있다가 생각나서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일단 괜찮아 보이는 만큼 괜찮습니다. 요즘 다시 나오는 SRPG들처럼 조작이나 게임 이해 측면에 있어서 깔끔하고, 사소하게 더빙이 있는 것도 괜찮습니다. 게임플레이는 크게 실패할 요소 없는 SRPG 같습니다. 전투 이펙트에는 이것저것 공을 들인 것 같은데, 어차피 SRPG는 그걸 안 보게 되는 장르죠.

귀찮은 점은 실수했을 때 다시 플레이하거나 하는 시스템 보조가 전혀 없고, 전투 중 1슬롯 세이브 정도만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추가 목표를 만족하며 진행하기를 기대하는 게임 같은데, 세이브로드하는 타이밍을 신경써서 게임하는 건 별로 하고 싶은 일은 아니라 이걸 견디면서 계속 플레이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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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여러 효능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시각정보

흰 티셔츠의 가슴 부분에 "책의 여러 효능"이라는 제목으로, 30컷 안에 책의 여러 좋은 점이 나열되어 있는 티셔츠입니다.

"책의 여러 효능"이라는 제목 아래, 흑백으로 된 30가지 만화 컷으로 책의 유용함을 열거해놓은 그림이 그려진 흰 티셔츠. 등은 비어 있다.

해설

내가 이상한 티셔츠와 책을 좋아한다는 걸 아는 사람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티셔츠. 마플샵에서 팔고 있는 듯하다.

생각

선물받은 티셔츠입니다. 100% 제 취향은 아니지만, 선물해준 분이 지난번에 선물한 티셔츠보다는 제 취향에 좀 더 가깝습니다. 이런 부분이 오래 알고 지내는 것의 재미있는 점이겠지요.

흰 티셔츠를 별로 입지 않아서 실제로 입을 일이 별로 없을 것 같다는 점이 아쉽고, 도안 자체가 티셔츠만을 위한 도안이 아니라 그런지 실제로 메세지 전달력이 높지는 않습니다. 어떤 분은 도안이 등에 있었으면 그래도 좀 읽어볼지도 모르겠는데 가슴에 있어서 부담된다는 말씀도 하시더라고요. 내용은 마음에 드는 편이었지만, 어떤 분들은 제가 입기에는 너무 메세지가 심심한 것 아니냐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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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ltan's Game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Sultan's Game
개발사: Double Cross
배급사: 2P Games
출시일: 2025년 3월 31일
장르: 어드벤처, 자원 관리

생각

『Sultan's Game』은 파괴적인 게임을 플레이하도록 명받은 폭군 술탄의 신하가 되어, 부당하고 파괴적인 명령을 수행하며 하루하루를 헤쳐나가는 게임입니다. 카드를 배치해 플레이하고, 생존에 유의하며 생활비를 벌어 가며 목표를 향해 반복적으로 플레이하는 구조가 『Cultist Simulator』를 떠올리게 합니다. 주인공에게 부조리한 시련을 주는 절대왕정이라는 이야기 구조에서는 『Against the Storm』도 떠오르네요.

개인적으로는 비용은 60초마다 꼬박꼬박 나가지만 돈을 버는 행동은 60고 걸리고 제가 몆 초를 놓치면 그만큼 돈 버는 사이클이 밀리는 『Cultist Simulator』보다는(매일 로그인 보너스가 마지막 로그인 후 24시간이 지나야 초기화되는 서비스같은 건 세상에 없어야 합니다) 턴제인 이 게임이 좀 더 납득하기 쉬운 감이 있습니다.

게임이 묘사하는 퇴폐적이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좀 더 느긋하게 즐기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일단 게임을 좀 이해할 때까지 삽질을 하는 동안에는 그걸 온전하게 즐기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게임을 이해하는 시점에는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갈지 모몰라서 즐거운 감각이 사라질 것 같고. 제가 요즘 이런 게임을 즐기는 데 느끼는 딜레마네요. 뭐 그 과정을 즐기면 될 것 같기는 한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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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끝의라멘의 끝라멘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가게정보

상호: 세상끝의라멘
인허가번호: 20180069240
주소: 서울특별시 마포구 양화로7길 6-5(2층 201호 서교동, 와와빌딩)
방문한 날짜: 2025년 5월
먹은 메뉴: 끝라멘(L), 수제교자

세상끝의라멘 끝라멘(라지), 수제교자.

생각

퇴근길에 라멘 생각이 나서 왔습니다. 요 몇년간 큰 변화 없이 계속 하고 있는 가게라 무난하게 올 수 있는 가게라는 생각입니다.

언제나 그렇듯 면사리를 부담없이 추가해 먹을 수 있는 가게라, 토핑이 많은 라지 사이즈의 라멘에 면을 추가해 먹었습니다. 교자도 무난했고요.

지난번에 ~라멘을 먹었으니까 이번엔 다른 걸 먹어야지… 하고 들어가는데, 왠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끝라멘만 먹는 느낌이 있습니다. 첫라멘을 처음 갔을 때 빼고 먹은 기억이 왠지 없는데. 음, 그렇다고 다시 가서 먹자니 간장계열 라멘보다 돈코츠 라멘이 먹고 싶고 요즘 별로 하는 데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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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lden Idol Investigations - The Lemurian Phoeni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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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명: The Rise of the Golden Idol
DLC명: Golden Idol Investigations - The Lemurian Phoenix
개발사: Color Gray Games
배급사: Playstack
출시일: 2025년 5월 14일
장르: 추리, 퍼즐

생각

『The Rise of the Golden Idol』의 두 번째 DLC 입니다. 비교적 현대 문명의 수사관 느낌이 있었던 지난 DLC에 비해 좀 더 과거 느낌입니다. 1940년대의 전통주의, 권위주의 레무리아를 배경으로 여러 사람들의 욕망이 교차하는 이야기이지요.

지난 DLC가 색다른 시도를 했고 그게 꽤 마음에 들었던 것과 달리, 이번 DLC는 꽤 예상가능한 범주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초능력과, 사기를 치려는 인간들과, 사건을 관찰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플레이어. 좀 더 일반적인 황금 우상 경험이지요. 본편에서 중요하게 등장했던 인물의 과거를 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는 포인트입니다.

게임을 다 플레이하고 트레일러를 보는 재미도 여전히 있네요. 저는 애초에 DLC 풀 세트를 샀지만, 이번 편도 여전히 추천할 만한 DLC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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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 사회(魚社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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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서명: 魚社会
저자: panpanya
출판사: 하쿠센샤
출간일: 2021년 7월 30일
국내 발매 서명: 물고기 사회

생각

『물고기 사회』는 panpanya의 단편집입니다.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다음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카스테라빵 이야기」의 뒷 이야기가 계속 이어집니다. 작가의 수기처럼도 느껴지는데… 이렇게 계속 추구하는 이야기는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도 베이킹의 영역은 이렇게 할 수 있나 싶네요. 제가 제로콜라를 조제해서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매우 괴로울 것 같습니다.

표제작인 「물고기 사회」는 옛날 작품 중에 있던 「뉴 피시」를 떠올리게 되네요. 주인공이 두 사회를 잇는 식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어떤 종류의 낙관주의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인간이라는 종이 다른 종과 대등하고 합리적인 관계를 맺는 미래를 엿볼 수 있는 작품에는 매력이 있는 것 같아요.

「잉어빵 편력」같은 가짜 규칙 만화도, 「보통」같은 다소 괴담에 가까운 만화도, 「자유」나 「비밀」같은 주택가를 테마로 한 만화도 인상에 남는 지점이 있습니다. 이번 권도 무난하게 마음에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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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을 찾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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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게임명: 신을 찾는 이
개발사: Uiqoo, Shortcake Sweets, CubeDo
배급사: Cursor Chasing Cat
출시일: 2025년 5월 20일
장르: 퍼즐

생각

『신을 찾는 이』는 소코반과 경로 찾기 퍼즐로 이루어진 게임입니다. 규칙을 명시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은 『Understand』를 떠오르게도 하지만, 주어진 조건 안에서 불가능해보이는 퍼즐을 푼다는 점에서 고난이도 소코반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형식에 가까워 보입니다.

엔딩을 보는 데 두 시간 남짓 걸리는 길지 않은 구성있지만 완성도 있게 채워져 있습니다. 하나의 퍼즐에서 여러 가지 답을 찾는 구성도 좋고, 진엔딩을 보기 위한 기믹이 꽤 인상적이네요. 힌트도 잘 되어 있고 스토리도 단순하지만 상징적인 느낌이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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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imberbor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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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정보

게임명: Timberborn
개발사: Mechanistry
배급사: Mechanistry
출시일: 2021년 9월 16일
장르: 정착지 건설

생각

『Timberborn』은 문명화된 비버 무리를 이끌며 정착지를 건설하는 정착지 건설 시뮬레이션 게임입니다. 겨울 대신 가뭄이 도래해 물이 마르고, 거기에 대처하기 위해 댐을 비롯한 수리 시설을 지으며 대처하는 종류의 게임이죠. 옛날에 사서 조금 해 보고 집어넣었다가, 집라인이 업데이트되었다고 해서(딱 봐도 게임 안에서 보고 싶게 생기지 않았습니까?) 다시 설치해서 켜 보게 되었습니다. 정작 거기까지 테크를 찍고 싶지 않아서 다시 넣긴 했지만….

유닛 하나하나가 중요한 종류의 도시 건설 시뮬레이션이 그렇듯, 마이크로매니지먼트는 필연입니다. 거기에 익숙해질 수 있고 전체 기계수준을 조망하다가 기계 부품 하나하나가 맞물려 돌아가는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이 이런 게임을 저보다 잘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까지 가는 길을 비버라는 설정이 도와줍니다. 댐을 짓는 것이나, 나무를 캐라고 하면 나무를 이로 갉는 것이나, 이빨이 부러지면 갈아줘야 한다거나…. 건물을 쌓을 수 있는 등 여러 모로 파고들어 플레이할 여지가 있어서, 오래 할수록 맛이 나는게임일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정도로는 오래 하지 못하기 때문에, 한 세션 길이가 『Against the Storm』 정도인 게 요즘은 더 취향인 것 같긴 하지만요.

꾸준히 발전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 보이는데, 슬슬 초보자를 위한 설명을 좀 더 만들어줘도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없지 않습니다. 커뮤니티 자료를 봐도 되긴 하는데, 일단 영어로 작성된 자료이다 보니 수리시설 용어를 찾아보고 뭐가 제방인지 뭐가 수문인지 알아보는 것도 좀 쉽지 않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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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eck Inn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Check Inn
개발사: KishMish Games
배급사: KishMish Games
출시일: 2025년 1월 16일
장르: 관리, 경영

생각

『Check Inn』은 같은 회사의 『Fly Corp』을 사는 김에 번들로 함께 구입하게 된 게임입니다. 호텔을 짓고 투숙객을 받아 돈을 벌고 요구를 만족시키며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는 게임입니다.

현실적인 경영보다는 캐주얼하게 즐길 수 있는 부분이 강조된 게임입니다. 객실의 형태가 현실적이라기보다는 사이드뷰에서 공간 배치를 하는 퍼즐스러운 느낌이라, 테트리스를 하듯 쌓아나가는 감각이 나쁘지 않습니다. 투숙객을 방에 받는 과정은 식당 경영 시뮬레이터 게임에서 음식을 빨리 조리해서 서빙하듯 빠른 시간 내에 방에 집어넣어야 하는데, 방이 다 차 있을 경우에는 투숙객이 올 때는 없던 방을 올려서 지어서 집어넣어야 합니다. 게임 측면으로는 말이 되나? 싶은데 호텔 경영 게임에 기대하게 되는 무언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캐릭터들이 생동감있게 움직이는 건 아닌데, 캐릭터들이 재미있게 묘사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건 그래도 꽤 흥미롭게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포터는 엘리베이터가 있어야 움직이지만 하우스키퍼는 엘리베이터 없이 움직이는 건 게임적으로는 말이 되는 것 같은데 이래도 되나? 싶은… 잘 모르겠는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도, 뭐 간단하게 잡고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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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 Corp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Fly Corp
개발사: KishMish Games
배급사: KishMish Games
출시일: 2023년 5월 18일
장르: 트래픽 관리, 미니 메트로-like

생각

『Fly Corp』는 세계를 기반으로 공항 간의 항공 루트를 연결해서 수익을 내고, 그 과정에서 특정 노드가 과부하가 걸려 게임오버당하지 않게 조절하는 『Mini Metro』와 같은 게임입니다. 『Mini Metro』가 철도, 『Mini Motorways』가 도로와 차량이었다면 이 게임은 공항과 항로, 비행기인 셈이죠.

일단 튜토리얼을 끄고 느낀 건 당혹감이었습니다. 게임 모드가 여럿 있어서, 튜토리얼 다음 순서로 연결되어 있는 「세계를 발견」모드를 선택했는데, 노드를 10개도 연결하지 못한 채로 게임오버되는 것이었습니다. 몇 번 해 봐도 비슷한 결과였습니다. 이게 처음 하라고 있는 모드가 아닌가? 싶어서 다른 모드를 둘러봤습니다. 순서대로 「시나리오」, 「무료 플레이」, 「사용자 지정 시나리오」였습니다. 마지막 것을 제외하고 나면… 시나리오여야 하나, 무료 플레이여야 하나 하다가 무료 플레이로 들어가 봤습니다. 「클래식 모드」와 「사다리 모드」가 있고, 사다리 모드를 통해서 두 모드에서 얻을 수 있는 아웃게임 프로그레션을 선택할 수 있어 보여서 사다리 모드를 선택했습니다. 이건 너무 게임이 금방 끝났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나리오 모드에서 하나씩 진행하는 게 정답이었던 것 같습니다. 게임이 처음 출시되고 나서 콘텐츠를 이것저것 추가한 상태로 보이는데, 정작 그 상황에서 게임을 처음 접한 사람이 뭐부터 해야 하지? 가 잘 안 보여서 아쉽습니다. 게임은 공어떤 공항이라도 정원을 넘긴 채로 5초가 되면 게임 오버 되고 해당 시점에 (기본 옵션으로) 해당 공항으로 포커스를 시켜주고 큰 효과음을 울리는데, 초반부에는 그 5초 이내에 정원이 원래대로 돌아오는 경우(비행기가 사람들을 태우고 출발해서)가 많아서 해당 시점을 알려주는 경고가 false alarm이 되어 게임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는 점도 꽤 어려웠습니다.

게임 자체는 진득하게 잡고 플레이하면 팔 여지가 많아 보이는데, 저는 그 단계까지 가기는 조금 어렵네요. 평이 제가 느낀 것보다는 좋은 게임인데, 출시를 거치고 콘텐츠를 추가하면서 초반 플레이어를 온보딩시키는 기능이 조금 흐려졌나? 같은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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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문화를 읽는 6가지 키워드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중국 문화를 읽는 6가지 키워드 - 영웅, 인의와 도, 서정, 사랑, 혼백, 항전통
저자: 리어우판(李歐梵)
역자: 신의연
출판사: 흐름출판
출간일: 2020년 12월 7일
원서명: 中國文化傳統的六個面向
원서 출간일: 2016년

생각

『중국 문화를 읽는 6가지 키워드』는 사게 된 경위가 잘 기억나지는 않는 책입니다. 그래서 리디북스의 책 소개 페이지를 읽었는데, 책을 직접 읽었을 때의 줄기인 "이 책은 저자의 강의를 책으로 엮은 것"이 소개 페이지에 부각되어 있지는 않아 조금 인상이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번역서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일이 있으면 저는 원서는 어떻게 포장되어 팔렸는지를 보는 편인데, 중국어는 잘 몰라서 원서 제목이 대충 『중국 문화 전통의 여섯 가지 측면』정도인 것만 알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원서랑 기획이 크게 차이나는 책은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은 중국의 고전 텍스트 중 여섯 가지를 꼽아 작품이 탄생한 배경, 저자의 삶, 당시의 환경 등을 이야기하며 작품이 당시와 오늘날 갖는 의미를 짚습니다. 필요하면 다른 교수의 설명을 더하고, 학생들의 질문에 답하는 내용까지 책에 실려 있어 알찬 강의를 들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사기』 중 「항우본기」로 보는 영웅 전통, 한유의 『원도』로 보는 유교 전통, 소동파의 서정 전통, 풍몽룡의 『장흥가중회진주삼』이 세속적 욕망을 부정하지 않는 모습, 『요재지이』가 다루는 괴력난신, 루쉰이 보여주는 근대성.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중국 문화에 주요하게 영향을 미친 유교 문화와 그 반동들로 중국 문화를 설명하고 있는 느낌입니다.

원문 자체가 중국인, 그리고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강의이다 보니, 제가 놓치는 것들이 꽤 있을 것 같습니다. 비교적 최신 중국 작품에 이런 전통이 어떻게 이어졌겠거니 하는 것들을 알면 더 재미있겠다는 생각도 들며, '문언문'과 '백화문'의 차이도 잘 모르다보니 어떤 서술들은 좀 덜 와닿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더라도, 중문학에 대해 훑어보기에 좋은 책인 것 같습니다.

최근에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를 읽었는데, 루쉰을 이야기할 때 니체를 언급한 것이 우연히 제가 읽은 두 책이 연결되는 지점이 있어 재미있었습니다. 이런 재미 때문에 저는 책을 한 권 진득하게 읽는 것보다는 여러 권 읽게 되는 것 같기도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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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kimon: Quest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Dokimon: Quest
개발사: Yanako RPGs
배급사: Yanako RPGs
출시일: 2024년 11월 22일
장르: RPG, 포켓몬-like

생각

『Dokimon: Quest』는 3D화 이전의 레트로 포켓몬, 그러니까 3세대까지의 포켓몬스터 게임 시리즈와 같은 형식으로 만들어진 생명체 수집 RPG 게임입니다.

실제로 게임을 해 보면 레트로한 느낌과 새로운 느낌이 꽤 섞여 있는데, 그래픽 측면에서는 꽤나 레트로하고, 문장의 길이나 스토리는 꽤 그 시절 것보다 복잡하며, 편의성면에서는 나은 지점이 있고, 몬스터는 제 취향은 아닙니다. 맵 타일들에서는 묘한 자포네스크함을 느낍니다.(개발사인 Yanako RPGs는 도쿄 소재라고 합니다) 저는 이 모든 것들이 조합되어 이것저것 미묘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인 흥미는 이 개발사는 게임메이커 기반으로 이러한 포켓몬스터같은 게임을 만드는 툴인 『MonMae』를 판매하고 있고, 이 게임은 해당 툴로 개발된 데모 프로젝트 성격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항상 제가 만들고 싶은 스토리 있는 JRPG를 쉽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헤메는 편인데, 여기에도 그럴 가능성이 있을까? 해서 찾아보게 된 것도 조금은 이 게임을 하게 된 이유입니다.

다른 건 모르겠는데, 식당처럼 생긴 상점에 들어가서 상점 NPC에게 말을 거니까 "주문은 테이블에 있는 QR 코드로 해 주세요"라는 응대를 받고, 실제로 테이블에 말을 거니까 상점 메뉴가 열리는 건 정말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정말 무서운 세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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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나는 게임한다 고로 존재한다
저자: 이동은
출판사: 자음과모음
출간일: 2021년 7월 2일

생각

은평구립도서관에서 빌린 책들 중 한 권으로, 『외눈박이 시대의 외눈박이 기자』에 읽어 읽은 책입니다. 도서관에서 고를 때는 게임에 관한 논의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다시 보면 좋겠고, 청소년 대상 게임 인문학 도서라는 것이 어떻게 써져 있을지 궁금해서 집게 되었습니다.

책은 여러 꼭지의 글을 분류별로 모은 책인데, 계보와 역사를 다루는 2장 말고는 어떤 성격들로 나뉘었는지 저는 조금 알기 어려웠습니다. 제가 모르고 있던 논의가 많지는 않았지만, 데니스 와스컬, 로제 카이와 같은 사람들의 저술은 한 번 확인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회가 된다면 읽게 되겠죠. 여러 모로 게임과 관련된 논의들을 훑어가기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임과 게임플레이에 대해 청소년 친구들과 함께 논의하고 싶다면 딱 맞는 책 아닐까요.(빌린 책 가운데에 누군가의 독서노트가 들어가 있었다는 예상치 못한 즐거운 이벤트도 있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의 집합체로(보통 학계와 대조하는 의미로) "게임 업계" 내지 "게임 산업"을 호출하는 것에는 거부감이 있습니다. 다루어지는 많은 게임들의 다수는 업계와 산업에서 오는 것이 많지만, 개인 개발자나 산업의 이익과 무관하게 돌아가는 작은 팀, 취미인에 의해 개발, 공개, 관리되는 게임도 유의미하게 있거니와, 그 경계가 모호할 때도 있기 때문이지요. 이 책도 그런 식의 언급이 있는 것은 제게는 살짝 아쉽습니다.

또 이런 책을 쓸 때에는 언급할 게임을 선정하는 것도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역사적인 의미를 언급할 게 아니라 게임 자체를 예시로 삼기 위해 언급하려면 출간 당시에 플레이해볼 수 있거나,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아는 게임을 고르는 게 적합해 보입니다. 게임은 다른 매체들보다 그게 좀 더 어려운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영화과에서 예시로 드는 영화들을 신입생들이 본 적이 없어서 곤란하다는 이야기도 떠오르네요. 제 레퍼토리도 좀 넓혀두지 않으면 나중에 곤란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에 이어서, 한 동안은 게임에 관한 책을 계속 읽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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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눈박이 시대의 외눈박이 기자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외눈박이 시대의 외눈박이 기자
저자: 이영성
출판사: 커뮤니케이션북스
출간일: 2008년 5월 16일

생각

『외눈박이 시대의 외눈박이 기자』는 커뮤니케이션북스의 『한국의 저널리스트』시리즈의 한 권으로, 한국일보의 정치부에서 오래 활동한 이영성 기자의 사설, 회고를 묶어 낸 책입니다.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장기대여한 책 중 한 권으로, 『도둑의 도시 가이드』 다음으로 올리는 책이네요.

이 책을 도서관에서 집게 된 배경은 오늘 우리 사회에서 언론이 어떤 방식으로 오늘과 같은 보도를 하게 되는지 궁금해서였고, 기자 개인을 조명하는 책을 통해서 그것을 보기 위해서였습니다. 잊기 쉽기는 하지만, 거대한 담론의 대상인 언론도 결국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기자 한 사람 한 사람이 없으면 작동하지 않습니다. 기자들이 어떤 식으로 취재 대상과 상호작용하고, 상사와 동료들이 있는 환경에서 보도를 하게 되는지를 이해하고자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연히 손에 잡힌 책이 이 책입니다.

책의 절반 정도는 새로 쓴 글이 아니라, 이영성 기자가 실제로 특정한 시점에 당시의 사건에 대해 쓴 사설이어서 그 당시의 정치 상황에 대해서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뭐 동교동계가 어떻니 3당 합당이 어떻니 같은 이야기는 솔직히 잘 모르는 이야기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당시의 날선 비판들은 이 상태로 보존되어 있는 걸 보는 것이 꽤 낯설기도 합니다.

저는 책을 읽고 저자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많이 던지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의 모습을 보라. 당신이 이 책을 쓸 때 했던 분석과 오늘날의 모습은 얼마나 이어지는가?" 저자인 이영성 기자는 맺는말 성격의 「역사를 뒤돌아보고 그 앞에서 겸손해지자」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은 민주화 이후의 시대정신을 찾는 데 더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무조건 '성장과 일자리'만을 외치거나 '분배와 사회적 형평'을 고집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저는 한국사에서 일컫는 '민주화' 시대에 살지는 않았기 때문에, 으레 쓰이는 "민주화 이후"라는 것이 딱히 구분되지 않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대는 모두 민주화 이후였기 때문이지요. 그 때 우리는 무슨 시대정신을 찾고 있었을까요? 책이 출간된 2008년 전후에는 확실히 성장이냐 분배냐 가지고 논쟁했던 것 같기도 합니다. 지금 와서는 내 집값이 오르냐 내 전세보증금이 오르냐로 싸우고 있는 것에 가까워 보이긴 합니다만…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가 맞이하는 문제를 보면, 글쎄요. 민주화가 지나간 시대정신이라고 여기고 다른 시대정신을 찾는 것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렸던" 건 아니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

태어나기 전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이 시대의 문제를 찾아 해결하는 건 이 시대를 사는 제게도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저는 정작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막막합니다. 적어도 이 책이 저보다 조금 더 앞선 시기에 자신의 일을 하신 분의 경험담으로 와닿는 지점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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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おむすびの転がる町)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おむすびの転がる町
저자: panpanya
출판사: 하쿠센샤
출간일: 2020년 3월 31일
국내 발매 서명: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

생각

『구야바노 홀리데이』에 이어 읽는 panpanya의 단편집입니다.

이번 권은 첫 에피소드 「쓰치노코를 발견함」가 학계를 떠오르게 하는 것도 재미있었고, 「쓰쿠바산 관광 불안내」가 지난 권의 필리핀 기행을 떠올리게 하다가도 미묘하게 기행이 아닌 포인트가 있어 차이를 재미있게 느끼게 되었습니다.

한편 「카스테라빵 이야기」는, 왠지 실존하는 제품 이야기 같은데, 공장에서 제조되었고 광범위하게 유통되어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것 같은 제품을 막상 찾으면 없고, 심지어 제조원에 문의해도 바로 즉답이 돌아오지 않는 복잡한 도시 생활을 떠올리게 해서 좋았습니다. 저는 국내에서 하는 살롱 뒤 쇼콜라에서 갤러 초콜렛을 접해본 이후 여러 번 사 먹으려고 찾아봤는데, 행사 이외에서는 어느 매장에서 살 수 있는지 몰라 헤멨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로 롯데백화점에서 살 수 있었고, 요즘은 온라인 공식몰이 생긴 모양입니다.)

표제작인 「주먹밥이 굴러가는 마을」도 좋네요. 전래동화의 내용이 현대에도 살아있고, 등장인물이 시대의 변화를 느끼거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나, 구르는 물건의 모양에 따라 어느 곳에 잔뜩 모인다거나 하는 포인트가 웃음을 자아냅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좋은 표현을 볼 때마다 다른 식으로 재생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데, 쉽지는 않은 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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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Small Mazes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20 Small Mazes
개발사: FLEB
출시일: 2024년 2월 17일
장르: 퍼즐

생각

『20 Small Mazes』는 크지 않은 미로 판에 여러 기믹을 다양하게 부여해 간단히 즐길 수 있는 미로 게임입니다. 무료 게임이고, 한 시간 내로 엔딩을 볼 수 있는 분량에 그렇게 어렵지 않습니다.

책상 위에 쌓인 수많은 종이 퍼즐을 하나하나 풀어나가는 느낌이 있어서 재미있는 구성이라고, 좋은 게임이라고 생각하지만 요즘은 계속 이런 게임으로서의 성공을 프로덕트의 성공으로 이어 나간다면, 쉽게 말해서 돈을 벌려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같은 생각에 계속 빠지게 됩니다. 만드신 분은 그런 생각을 (최소한 이 게임에 대해서)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저만 필사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지요.

개발자분은 후속작으로 이 게임과 비슷하지만 미로 대신 직소 퍼즐을 콘셉트로 삼은 『Strange Jigsaws』라는 게임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어떤 작품이 될지, 또 프로덕트에 어떤 선택을 반영하셨을지가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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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둑의 도시 가이드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도둑의 도시 가이드
저자: 제프 마노(Geoff Manaugh)
역자: 김주양
출판사: 열림원
출간일: 2018년 6월 20일
원서명: A Burglar's Guide to the City
원서 출간일: 2016년

생각

은평구립도서관에서 장기대여한 39권의 책 중, 『궁극의 문자를 찾아서』에 이어 두 번째로 읽는 책입니다. 도시 설계와 건축에 관심이 있어서 그것을 범죄자의 입장에서 다룬 책이라고 하여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핵심 아이디어는 다음과 같습니다.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은, 다소의 예외는 있을 수 있지만, 건축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목적을 효율적으로 달성할 수 있도록 설계합니다. 그런데 도둑, 혹은 침입절도자(burglar)들은 설계자들이 상정하지 않고, 이용자들이 상상하지 못한 방법으로 건물을 이용한다는 것이죠.

맺는말에 가까운 성격인 마지막 장까지 총 일곱 장에 걸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여러 일화를 소개하는 구성으로, LA를 헬리콥터로 순찰하는 대원, 자물쇠 풀기 스포츠 관련자, 유명한 도둑을 검거한 경찰, 심지어는 게임 『시프』를 만든 디렉터나 『범죄의 재구성』, 『도둑들』의 최동훈까지 인터뷰하거나 업무에 동행하며(최동훈의 인터뷰는 책에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다양한 이야기를 보고 듣는 것이 이 책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게임을 하면서 게임의 진행 상태를 개조해서 플레이하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그런 행동들과의 유사성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제가 진행상태나 게임 데이터를 개조하는 것은 대개 이 게임의 개발자가 의도를 가지고 어떤 경험을 주려고 했지만 도무지 그 목적을 달성하기 어려워보이는 게임 디자인에 항의하는 성격에(다음 단계로 넘어가려면 결과가 달라지지 않는 행동을 너무 많은 회수 반복해야 한다거나 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은 게임에 있습니다) 가깝습니다만, 아무튼 목적 면에서는 일치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하는 건 백화점에 들어가서 1층부터 8층까지 아무것도 안 보고 9층까지 순간이동해서 푸드코트에서 밥만 사 먹고 건물 밖으로 순간이동하는 행동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것과는 다소 성향이 다르지요. 멀티플레이어 게임에서 핵을 쓰는 행위는 좀 더 명확하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좀 더 침입절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음, 그런 기준으로 비교를 해도 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것저것 생각나는 바가 많은 책이었습니다. 서울시가 광화문광장과 시청광장을 무력화하는 것도 생각이 나고, (무허가로) 마천루의 벽면을 오르거나 파쿠르를 하는 사람들 생각도 나고, 게임 『와치 독스』 생각도 나고요. 프로그래밍 쪽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게 된 『패턴 랭귀지: 도시, 건축, 시공』 생각도 나고요. 이 책은 다른 도서관에 있어서 빌리자면 빌릴 수는 있겠는데, 두께를 생각하면 완독하기 위해 빌릴 수는 없을 것 같네요. 반체제적이고 저항적인 건축/건축 오용(책의 표현을 빌림)을 다룬 책이 더 있으면 읽어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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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출시하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것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게임을 출시하기 위해서는 개발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아래는 그것들의 간단하고 망라하지는 않는 목록이다.

  • 옵션 메뉴
    • 볼륨 조절. 바라건대는 배경음/효과음/대사별로.
    • 키 바인딩/컨트롤 조작 확인 및 설정. "디폴트로 되돌리기"가 있으면 좋고. qwerty에만 대응하게 만들 수도 있고, 다른 키보드 레이아웃(dvorak이나 colemak 등)에서도 알아서 잘 하게 만들 수도 있고.
    • 화면 출력 모드(전체화면/창모드) 설정. 보더리스.
    • 게임의 화면과 음성을 어느 출력장치로 출력할지 대응하기. 모니터 선택 기능은 Alt+Enter 창모드 기능으로 대체할 수도 있다.
  • 게임이 켜지게 만들기
    • 비교적 희귀한 해상도의 화면에서 게임이 깨지지 않게 만들기.
    • 게임이 상정하지 않은 해상도의 모니터, 최소사양 미만의 PC에서 부드럽게 깨지게 만들기.
  • 없으면 안 되는 것들
    • 세이브/로드. 덮어쓰기, 게임 데이터 상실 경고, 무슨 세이브 파일이 어떤 상태였는지 보여주게 만들기.
    • 게임을 업데이트한 뒤에 기존 세이브파일로 게임을 계속 이어할 수 있도록 마이그레이션하기.

그리고, 게임도 만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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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
저자: 리 스핑크스(Lee Spinks)
역자: 윤동구
출판사: 앨피
출간일: 2009년 1월 20일
원서명: Friedrich Nietzsche
원서 출간일: 2003년

생각

『가치의 입법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앨피 Routledge Critical Thinkers 시리즈의 한 권으로, 『문제적 텍스트 롤랑 바르트』와 같은 시리즈입니다. 와이프의 서가에 꽂혀 있는 책이라 출근할 때 골라서 들고 다니며 읽고 있습니다.

저는 이 책에서 묘사되는 니체의 철학에 별로 동의할 수 없고, 오늘날에 교훈으로 삼을만한 내용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니체가 도덕을 계보학적으로 분석한 내용과 방법론에는 꽤나 동의할 수 있습니다. 당시(와 오늘)의 도덕은 약자들이 강자들을 제압하기 위해 만든, 이른바 노예 도덕이라는 것이지요. 제가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은, 삶에 내재된 힘에 대한 의지를 긍정하며 약자의 도덕이 지배하기 전의 강자, 귀족적 문화를 미덕으로 소환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강한 자가 만들었던 규칙은 왜 약자의 규칙으로 대체당했을까요? 강한 자들의 힘이 약한 자들의 힘보다 약해지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이지요. 니체의 말로는 약한 자들, 제 말로는 주권자들이 강자들을 뒤엎을 수 있는 봉기를 허용하는 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강자의 규칙이 끝난 것입니다. 그 뒤를 이어서 새롭게 역사에 등장한 강자들-세상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해석할 수 있던 사람들-도,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노예의 도덕을 내재화하고 강자의 세상을 규정하는 힘에 도덕을 도입했습니다. 그것이 제가 보는 계보입니다. 니체는 강자와 약자를, 주인과 노예를 이분화하면서 노예의 삶 속에 존재하는 주체성을 보지 않으려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삶에서, '힘을 추구하는 것'과 '억압받지 않으려는 것' 중에서 무엇이 주체적이고 무엇이 반응적인가? 라고 하면 저도 힘에 대한 의지를 주체적으로 꼽고, 인류의 발전 내지는 직면한 문제를 푸는 행위에 더 기여하는 자세로 꼽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추구는 극단주의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까지 쓴 건 오늘날, 제가 아는 모든 역사와 최근의 사건들을 봤을 때의 시점이고, 니체가 보고 비판하려 했던 것은 조금 달랐을 것 같습니다. 니체가 본 유럽의 역사와 세상에 대한 설명 능력과 규칙의 장악력을 잃어가는 당시의 기독교. 그 과정에서 무엇을 추구해야할지 모르고, 니체가 보기에는 헛된 가치를 찾아 헤메는 사람들. 그것에 대해서 답을 주기 위해 도달한 개념들이 힘에 대한 의지, 위버멘쉬, 영원회귀라고, 적어도 이 책을 읽고 나서는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동의가 되는 부분도 없지 않지요.

하지만 힘에 대한 의지의 힘이 약자를 향한 폭력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설명과 해석을 스스로 세워나가는 힘이라고 하더라도, 그것과 비슷한 것이 '대안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발호하는 오늘날 힘에 대한 의지를 긍정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니면 니체는 개인됨과 귀족됨, 인간의 보편적 삶과 가치의 범주를 넘어선 삶에 대한 탐구의 실례로 독자적인 세계관을 갖는 것을 긍정하거나, 의도는 좋았다고 평가할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삶의 목적"을 한 가지 힘으로 환원하여 설명하려고 하는 데 동의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극단주의로 가는 지름길을 내는 일입니다. 영원히 반복되고 무한한, 끝이 없는 삶을 가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제가 본… 무한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한 사람들은 모두 말년에 미쳐버렸습니다. 니체가 비판하려고 한 것에는 대체로 동의할 수 있습니다. 진리의 허구성. 도덕과 가치의 파멸. 하지만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들이 적확했는가 하면, 글쎄요. 저는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책은 마지막에 니체가 영향을 준 이후의 작업들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데리다에게 준 영향도 이해할 수 있었고, 오늘날까지 영향력을 발휘하고 저도 당연하게 생각하는 여러 사고방식의 근간을 니체가 닦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 글에서 제가 요약본만 읽고 주제도 모르고 까부는 것보다는 좀 더 니체 본인의 생각을 깊게 파악해보는 게 필요할 것 같기도 한데, 당분간은 그럴 시간은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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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머는 설명해야 하면 실패한 거다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유머는 그 유머가 왜 웃긴지를 설명해야 하는 순간 실패"라는 말이 있다. 나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일단 그 말이 틀렸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니다. 유머를 설명해야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그걸 바로 받아들이거나 동의하는 데 실패했다는 이야기이고, 대화의 흐름이 끊어지고, 유머를 발화함으로 달성하고자 했던 여러 목표들이 달성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은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피터의 법칙과 유사하게, 대부분의 유의미한 말은 그 말을 적용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지점까지 재생산된다. 이 말의 경우 적절하지 않은 지점은 어디일까? 유머에도 피터의 법칙 같은 건 존재한다. 잘 작동하던 유머가 있으면, 그 유머는 퍼지게 되어 있다. 리트윗과 좋아요가 있고 밈 재생산에 적합한 매체에서는 특히 쉽다. 처음에는 잘 작동하는 유머 또한 피터의 법칙처럼 실패하는 지점까지 퍼질 수 있고, 그 지점에서 '설명'해야 하는 유머가 된다. 그 시점에서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할 수 있다. "(나한테) 설명이 필요한 유머라니, 이것은 (객관적으로) 실패한 유머이다." 나는 이 지점이 싫다. 그냥 널리 퍼진 유머를 발신한 사람이 자연 현상처럼 받아들여야하는 일일지도 모르겠지만.

반대 방향의 이야기이지만, 나는 xkcd, SMBC가 왜 재미있는지, 일본어로 올라오는 수많은 팬아트가 왜 재미있는지를 알기 위해서 그 유머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 지식을 찾아보는 편이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explain xkcd같은 사이트도 있다. 나는 유머를 삶에서 분리해낼 수 없는 사람이다. 그런 나한테는 설명이 필요한 유머야말로, 내가 모르는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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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ep Driving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Keep Driving
개발사: YCJY Games
배급사: YCJY Games
출시일: 2025년 2월 6일
장르: 여행, RPG, 자원관리

생각

『Keep Driving』은 운전면허를 갓 딴 (미국의) 젊은이가 여름 한 달을 도로에서 지내는 내용의 자동차 여행 게임입니다. 운전을 직접 하지는 않지만, 도로에서 겪는 각종 이벤트(트랙터 뒤에서 운전하기, 뒤에서 빵빵대는 차량, 열악한 도로 등)를 자원을 관리하는 데 중점이 있는 RPG 형식의 전투로 해결하는 게임플레이입니다.

게임을 시작하면 지도 반대편에 있는 페스티벌에 도착하는 것을 목표처럼 주지만, 게임의 주안점은 길에서 만나는 히치하이커와 상호작용하고, 이야기를 즐기고, 이 여행이 어디서 마무리될지 예측할 수 없는… 과정을 즐기는 데에 있습니다. 히치하이커는 마치 RPG의 파티원같은 구성으로 이 게임에 참여하는데 그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지만, 길동무 삼기에는 부적절한 단점도 있고, 일시적으로 여행을 함께 하다 목적지에 도달하면 떠나가버리기도 합니다.

젊음의 한 순간을 즐긴다는 점에서 나쁘지 않은 게임 같습니다. 제 20대 초반이 떠오르지는 않고, 어떤 미국 젊은이들은 이런 경험을 하겠군… 같은 느낌이지만요. 운전이라. 운전… 글쎄요. 지금 제가 운전을 시작한다고 이런 경험을 하지는 못하겠지요. 하고 싶냐 하면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 게임이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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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EPHON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ZEPHON
개발사: Proxy Studios
배급사: Proxy Studios
출시일: 2024년 11월 8일
장르: 전략, 4X

생각

『ZEPHON』은 이른바 4X 게임입니다. 육각형 타일맵 기반의 세력 다툼 게임으로, 외계의 침공과 기계의 반란으로 황폐해진 지구에서 여러 세력이 다투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경험의 스무스함으로는 문명 7보다 나은 점이 있습니다. UI의 완성도와 게임 설명, AI와의 상호작용과 이야기 연출 측면에서 문명보다 훨씬 나은 측면이 있습니다. 문명보다 교전의 페이스가 길어서, 유닛의 소모와 보충을 생각하고 전선을 유지하는 느낌의 전투는 다른 맛이 있습니다. 같은 개발사의 전작인 『Warhammer 40,000: Gladius - Relics of War』와 비슷한 느낌일까요?

이 게임을 계속 할지에 대해서 묻는다면, 글쎄요. 이 게임을 제가 반복 플레이한다면 어째서일까요? 전략 게임에서 다양한 수 싸움을 즐기고, 더 잘 하게 되는 것을 즐기고, 이 세계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파헤친다? 마지막 요소 말고는 그렇게 끌리는 게 없네요. 문명을 플레이하는 건 제게는, 최신 작이 어느 정도 실망스러울지라도, 어떤 서사를 만들어내는 경험입니다. 이 게임은 그에 비하면 한 판 한 판이 『스타크래프트』같은 RTS의 의 밀리처럼 느껴집니다. 재미있을 수는 있겠지만, 제 게임은 아니지요. 오히려 이 게임에 캠페인 모드가 있었다면, 제가 『스타크래프트 2』의 캠페인을 즐겼던 것처럼 즐길 수 있었을 것 같네요.

거꾸로 문명 7은 왜 이 게임처럼 깔끔하게 만들어질 수 없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어떤 것들은 프로젝트의 자원 분배가 아쉬웠을 수 있지만, 어떤 것들은 디자인부터 대응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참 어렵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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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야바노 홀리데이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グヤバノ・ホリデー
저자: panpanya
출판사: 하쿠센샤
출간일: 2019년 1월 31일
국내 발매 서명: 구야바노 홀리데이

생각

『두 번째 금붕어』 다음으로 읽는 panpanya의 단편집입니다.

이번 타이틀 작품인 「구야바노 홀리데이」는 이것저것 성격이 다른데, 하나는 비교적 장편이라는 것이고, 더 중요한 건 실제로 여행한 것을 만화로 남긴 기행만화 성격이 있다는 것이겠지요. 우연히 구야바노 주스를 통해 구야바노라는 과일의 존재를 알게 된 주인공은, 구야바노를 먹기 위해 지인과 함께 필리핀으로 떠나게 됩니다. 사전정보 없이 읽는 동안에 구야바노가 실존하는 과일인지 아닌지를 고민하게 되는 점이, panpanya 작품스럽다고 할까요. 필리핀, 그 중에서도 세부 막탄 섬은 저도 한 번 가본 적이 있는데 이 만화가 묘사하는 광경을 보고 잠시 추억에 잠길 수 있었습니다.

2 페이지 단편 「수족관에서」는 실험적인 구성이 좋았습니다. 『두 번째 금붕어』의 표지에서 사용한 과학삽화같은 느낌이네요.

「고구마줄기 원더랜드」도 전형적인 panpanya 단편스럽고 좋습니다. 개인적으로 작품에서 묘사되는 맛있는 음식을 먹어보고 싶다고 생각하는 편인데, 지열로 익은 말도 안 되게 달콤한 고구마…. 기회가 된다면 먹어보고 싶네요.

다음 권도 기대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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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imeBrew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SlimeBrew
개발사: uptum
배급사: uptum
출시일: 2025년 3월 4일
장르: 캐주얼, 수박게임

생각

『SlimeBrew』는 일정 이상 합치면 맥주가 되는 슬라임을 합쳐서 맥주를 만들고, 슬라임이 통에서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게임입니다. 한 때 유행했던 '수박 게임'의 다른 버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슬라임을 합쳐서 맥주? 이상한 콘셉트처럼 보입니다.

게임을 플레이해보면 이 게임이 수박게임보다 좀 더 애교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이 게임의 슬라임은 수박 게임의 과일들과 달리 슬라임처럼 모양이 흐트러지며 빈 칸을 채웁니다. 수박게임의 공간 활용과는 다른 느낌이지요. 수박게임은 생각보다 게임오버가 쉽게 되지 않는 것이 오래 잡고 플레이하게 만드는 중요한 장치라고 생각하는데, 수박게임에서는 그 장치가 다소 불안정했다면, 이 게임에서는 좀 더 그 장치가 안정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게 불안정한 것이 수박게임의 디자인을 더 열등하다고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죠.

물리적 성질을 바꾸는 것으로 꽤 다른 느낌이 되었는데, 그걸 느끼기 위해서라도 해볼만한 게임인 것 같습니다. 아웃게임 랭킹과 랭킹 꾸미기 요소에 어느 정도 공을 들였는데, 뭐 그걸 목표로 플레이하지 않으면 나쁘지 않게 즐길 수 있는 요소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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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금붕어(二匹目の金魚)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서명: 二匹目の金魚
저자: panpanya
출판사: 하쿠센샤
출간일: 2018년 1월 31일
국내 발매 서명: 두 번째 금붕어

생각

『동물들』에 이어 읽는 panpanya의 단편집입니다.

여러 단편이 있지만, 처음 시작할 때 나오는 「멜로디」가 일단 마음에 꽂힙니다. panpanya의 작품에는 복잡한 도시를 구성하는 무언가이고,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잘 생각해보면 누군가의 손길이 들어가있을 수밖에 없는 무언가에 시선을 주는 것이 많은데, 「멜로디」에서는 주인공 이외에도 그것에 착목하고 스스로 그것을 재현해나가는 어른으로부터 (어린이인) 주인공으로 경험이 이어지는 내용을 다루고 있어서일까요. 복잡한 도시에서 나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개발」도 좋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들판에 전신주를 깔고 집을 짓고 거주민을 모으고 도로를 내고… 낸 도로가 국도로 인정받아 택배로 국도 표지판이 배송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거리가 되고 방해가 되는 전신주를 지하화하기 위해 철거하는 과정을 주인공과 조연 둘이서 하는 것처럼 묘사되는 과정. 이건 어떻게 말하자면 도시 건설 게임이랑도 닮아있는 느낌이죠. 현실과 꽤 다른 경로로 현실에 있는 일들이 벌어지지만, 왠지 편안하게 느껴집니다.

타이틀 작품인「두 번째 금붕어」도 무난하게 괜찮습니다. 안내견과 지하를 탐험하는 이야기는 전작에서도 본 것 같은데… 그 외에도 「숨바꼭질의 비결」, 「통학로 고인물(의역입니다)」도 생각할 여지가 있는 작품들이었습니다.

이래저래 편하게 읽기 좋은 단편들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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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스웰의 수수께끼 악마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Maxwell's puzzling demon
개발사: muratsubo Games
배급사: muratsubo Games
출시일: 2024년 8월 30일
장르: 퍼즐, 소코반

생각

『맥스웰의 수수께끼 악마』는 어려운 소코반류 퍼즐 장르의 작품입니다. 물리학에 등장하는 "맥스웰의 악마"를 콘셉트 삼아, 플레이어 캐릭터가 고온에 노출되면 안 된다는 콘셉트로 퍼즐을 푸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설정에 의해서, 플레이어 캐릭터는 고온 블록(빨간색)과 인접하면 죽기 때문에, 움직일 수 있는 영역이 생각보다 훨씬 좁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기본 규칙이 '밟으면', 즉 플레이어 캐릭터가 그 위에 올라가 있을 때의 조건으로 플레이어를 제약하지만,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인접으로 플레이어를 제약하기 때문에 여기서 오는 감각 차이가 꽤 있습니다.

힌트가 꽤 공들여 만들어진 것도 주목할 만한 점입니다. 이 장르의 퍼즐은 보통 기믹을 이용한 핵심 아이디어와 소코반의 어려움이 섞여 있는 법인데, 이 게임의 힌트는 소코반의 어려움을 거의 배제하고 플레이를 통해서 핵심 아이디어를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별도 (단순화된) 스테이지입니다.

사실은 게임을 클리어한 다음에 쓰고 싶었는데, 두 번째 월드를 어떻게 넘기고 나니 세 번째 월드에서 벌써 메타스테이지같은 요소를 쓰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엔딩을 보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겠다 싶어 적당히 마무리하고 감상을 정리하기 위해 지금 씁니다. 요즘은 꽤 피곤해서, 내 머리나쁨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하는 게임을 오래 하기 어려운 것도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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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배제주의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란 개인이 삶의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또는 문화적 측면에서 온전히 참여할 수 없는 상태와 그런 상태를 유지하거나 그런 상태로 만드려는 과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Report on the World Social Situation 2016, p.19)

『사회적 배제주의Social Exclusionism』라는 말은, 더 좋은 표현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상태를 추구하는 움직임을 가리키기 위해 붙인 이름입니다. 대충 다음과 같은 사례들, 그런 사례를 옹호하고 주장하는 사례들을 보다가 이 문서를 쓰게 되었습니다.

  • 범죄자에 대한 극형, 제도적 사회 배제 요구
  • 장애인의 이동권 묵살 및 부적절한 시설 수용 행태에 대한 합리화
  • 성노동자 및 탈성노동자의 발언권 압수 시도와 탈성매매에 대한 방해
  • 미등록 상태/등록 상태의 이주노동자에 대한 차별 요구와 처우에 대한 합리화
  • 다양성에 대한 백래시

이런 사례의 대부분은, 사회적으로 배제하려는 대상이 사회에 어떻게 존재하는지에 대해 알려고 시도하지 않는 것과, '어쨌든 나는 보기 싫다'는 심리를 사회가 동의해야 한다고 믿는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 구조의 많은 장치들은 힘을 가진 권력자―대개는 국가겠지요―가 개인―사람을 포함하겠지만, 국가만큼이나 힘이 있는 자본가나 기업도 여기 포함되겠지요―에게 할 수 있는 폭거를 제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생각합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가져야 할 표현의 자유, 정치 참여의 자유 같은 개념들은, 사실 개인과 개인의 관계를 규정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만큼 국가가 개인에 대해서 행할 수 있는 폭거에 대해서는 우리가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사회에서, 그러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주권을 가져야 하는 사회에서, 그 주권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을 사회적으로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무엇으로 다스려야 할까요? 다스릴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떤 근거로? 누가? 저는 이 문제에 답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떻게 답을 내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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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Game About Digging A Hole

정진명의 굳이 써서 남기는 생각 @jm@guji.jjme.me

서지정보

게임명: A Game About Digging A Hole
개발사: rokaplay Bou·tique, Drillhounds
배급사: DoubleBee
출시일: 2025년 2월 7일
장르: 채굴

생각

『A Game About Digging A Hole』은, 평소에 그렇게 게임을 많이 하지 않는 와이프가 하던 게임이라서 흥미를 갖고 해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집의 광고를 보게 된 주인공은 그 집의 뒤뜰에 보물이 묻혀 있다는 정보에 혹해 집을 사고 뒤뜰을 파기 시작하며, 그 과정에서 적절하게 장비를 업그레이드하고, 다치지 않게 조심하며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더 깊은 곳으로 내려가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구조는 매우 단순한데, 땅을 파서 '당첨'이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시도를 해 보고 거기서 보상을 얻는 점, 적절한 타이밍에 창고로 돌아가서 환전하고 업그레이드하는 시스템, 너무 정신을 놓고 플레이하지 않게 주의해야 하는 배터리와 생명력과 같은 요소가 조합되어 즐거운 몰입 상태를 만드는 것 같습니다.

공지를 보니 꽤 입소문을 타고 스트리밍도 많이 된 게임인 것 같네요. 게임을 만들어서 돈을 벌어야 하다 보니, 어떤 측면에서든 성공한 게임을 보면 '이 게임의 성공을 내가 모방할 수 있을까?' 같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 게임을 모방한다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행동을 찾고, 그것에 적절한 게임적 보상-강화 사이클을 입히고, 콘텐츠와 퀄리티를 깎고, 적절한 충격을 주는 엔딩을 보여주는 일이 될 것 같습니다. 전혀 쉬워보이지 않는군요. 게임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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